집을 빨리 팔고 싶으면 빵을 구워라. 빵 향기가 집 보러 온 사람의 구매욕을 자극하여 계약 성사 확률이 높아진다. 단 마늘 양파 커리 냄새는 절대 금물이다.


(아마도 미국 쪽의) 오래된 부동산 매매요령으로 알고 있다. 저 마늘양파커리 부분에서 인종차별의 낌새가 느껴지는데 집처럼 덩어리 큰 자산을 빨리 팔아야 할 때 호오가 크게 갈리는 향신료폭탄에 버무려 내놓는 걸 현명한 전략이라 하기 좀 어렵긴 하다. 탄수화물이 먹기 좋게 익어가는 향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안정적으로 사랑받으니까 위험부담이 훨씬 낮겠지. 그렇다면 고구마는 어떨까? 지금 고구마 구운지 30분쯤 지났고 온 집안에 군고구마단내가 진동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냄새의 강도로 보면 고구마가 월등히 높으니 집의 이미지 향상에 훨씬 더 도움되지 않을까? 며칠전 산책할 때의 일이다. 어디서 익숙한 단내가 났다. 둘러보니 1시방향으로 약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군고구마 드럼통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구마단내는 점점 진해졌고 드럼통이 3시방향에 위치할 쯤에는(즉 최단거리. 드럼통에서 내가 서있는 지점의 산책로로 직선을 그었을 때 그 직선과 산책로가 90도각도를 이루는 시점) 완전히 후각을 압도했다. 그런데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파워워킹을 하던 이름모를 아저씨가, 어째 갈수록 조금씩 걸음이 무너지더니, 고구마 드럼통과의 거리가 가장 짧아진 순간 몸을 번개같이 직각으로 꺾어 고구마 드럼통을 향해 가버리는 거였다. 발목이 꺾일까 걱정될 정도로 갑작스럽고 이성이 나가버린 듯한 방향전환이었다. 뭔가 너무 신기한 움직임이라 한동안 멈춰서서 멀어지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고구마를 한보따리 받아든 그는 파워워킹으로 사라졌다. 십중팔구 계획에 없던 지출이었을 거다. 고구마의 가공할 마력. 문득 부동산 생각이 났다. 진짜진짜 간절히 팔고 싶은 매물에 들어가서, 고구마를 미리 한 삼백개쯤 구워놓으면 어떨까. 단내에 취해버린 매수자가 계약서에 싸인하고도 모자라서 집 벽지랑 장판이랑 내 얼굴에까지 막 싸인하려고 들 것 같다. 하지만 진지하게 실제상황이라 생각하면 그걸 진짜 굽겠냐.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그 단내를 맡으면 매수자는 부동산이 아니라 고구마를 사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할 것이다. 역시 쓸만한 건 식사빵의 나대지 않는 구수함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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