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초품아 마래푸 고래힐 마용성 노도강이 뭐의 줄임말인지 알아들어봤자 뭐하나.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 멍청해지는 느낌이고 내 정신머리로는 절대로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확신만 강해진다. 누군가 인생은 자기를 믿고 나아가는 거라 하던데 맨정신에 그게 가능한가. 진짜 부럽다. 내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믿어서는 안 될 인간은 나 자신이다. 확고한 자기불신 하나라도 건져서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너무 속단하는 건가? 비관의 탈을 쓴 고질적 게으름이 또 또 나를 과장되게 부정적인 결론에 주저앉히려드는 것 같다. 내 안에 잠재할지도 모를 천재적인 투자재능을 발굴하기 귀찮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 나이 먹도록 발굴되지 않은 재능이면 없다고 봐도 되지 않나? 내가 괜히 게으른 게 아니다. 이 또한 수십년간 축적된 빅데이터의 결과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올해로 구십먹은 투자왕 워렌버핏도 아직 배울게 많다고 그러는 판에 나이 운운하며 포기하는 것도 좀 저거하지 않나. 여기까지 쓰고 또 지뢰찾기했다. 지뢰 한번 찾을 때마다 시신경이 썩는 것 같다. 투자천재는 시발 얼어죽을 적어도 워렌버핏은 내 나이에 지뢰찾기로 시간낭비하며 자학하진 않았겠지. 잠재된 재능이고 나발이고 그냥 지금 하는 짓이 곧 나 자신이다. 나는 지뢰찾기 폐인이여.



_혹시나 해서 '워렌버핏 지뢰찾기'로 검색해봤다. 역시나 아무것도 안 나오고 무슨 명언 퍼레이드만 쏟아졌다(아 이 할배 명언 진짜 많이 했다). 심지어 구글에서 'Warren Buffett minesweeper'로도 찾아봤는데 건질 게 없었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였다. Bill Gates was so addicted to Minesweeper, he used to sneak into a colleague's office after work to play 빌게이츠가 지뢰찾기 중독자였다는 2015년 기사. 세계적 떼부자와 같은 게임중독자라는 억지동질감을 쥐어짜내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_지하철 옆자리 노인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체취며 몸동작이며 간헐적 소음이며 모든 분야의 암묵적 에티켓을 쪼끔쪼끔 아주 소극적으로 위반하고 있었다. 거슬렸지만 어렵게 잡은 구석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긴 애매했다. 한 십여분쯤 지났을까 노인이 푸르르르 한숨을 쉬었고, 그 서슬에 큰 침방울이 내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신발끝에 떨어졌다. 바로 튕겨져일어났다. 노인은 내가 떠난 자리에 스윽 엉덩이를 밀고 들어갔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앞에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노인이 있었다(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팩 돌리고 토를 했다. 속력을 전혀 줄이지 않고 걸어가며 토했다. 사실 구토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토사물치고는 묽고 소량인데 침이라 하기엔 또 양이 많았다. 액체의 성질이 뭐든간에 문제는 그게 뒤따르던 날 덮치게 생겼다는 거. 생선처럼 몸을 휘어 간신히 봉변을 피했다. 집에 잠깐 들렀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 다시 열렸다. 이웃노인이었다. 낭패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바에는 생수통을 지더라도 계단을 택하는 편이다. 하지만 애매한 면식관계의 웃어른과 함께 타버린 지금 휙 내려버리긴 곤란하지 않나. 생수통보다도 무거운 유교의 압박. 하는 수 없이 목례하고 앞을 보는데 노인이 들고 있던 전단지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아고고고 죽겠다 하며 그 위에 주저앉았다. 놀라서 어디 편찮으시냐고 묻자 다리가 아파서 서있질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 식겁해서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하자 아니 사실이 그런데 뭐 얼른 죽어야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을 때까지 늙으면 죽어야지,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시들어빠진 두 문장만 공허하게 오갔다. 날아오는 분비물을 피할 민첩성과 계단을 오르내릴 힘이 사라지기 전에 사이보그기술이 상용화되기를 간절히 빈다.



_그 어떤 SNS도 안하고 고민하던 유튜브도 안하고 한물갔다 말하기도 뭣한 블로그에 돌아와 요즘 트렌드치곤 긴 잡담을 쓰고 연필로 그림그리고 종이책을 읽고 게임마저 윈도우에 내장된 지뢰찾기를 하면서 IT·과학계의 최신뉴스를 열심히 찾아보는 삶. 뭘 좀 알고 도태되면 덜 슬플까. 추가적인 신규진입이 잘 발생하지 않는 오래된 산업(예를 들어 시멘트, 전통공예 등)의 수익률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이 상황에 맞는 얘긴 아닌 것 같다. 내가 주워들은 얘기란 대개 이런 식으로 어딘가 미묘하게 부적절한 시공간을 방황하다 사라진다.



_올봄에도 [내 나이가 어때서] 순회공연이 또 열릴까 모르겠다. 작년 재작년 봄에 사람들이 집앞에서 하루 온종일 저 노랠 불러제끼는 통에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특히 그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에서 딱!이 너무 싫다) 지금은 그 주책없는 에너지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또 하루종일 그걸 듣고 앉아있으면 생각이 바뀔 게 뻔하지만, 지금 심정은.





728x90

'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화  (0) 2019.02.21
먹고살기  (0) 2019.02.18
연휴 3일  (0) 2019.02.06
사람  (0) 2019.02.01
우리의 문제  (0) 2019.01.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