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샐러드팩 10개를 선택하고 주문버튼을 누르려다 '이 상품을 본 고객이 많이 본 상품목록'에 스테이크가 껴있는 거 보고 웃었다.



_쭈꾸미볶음에도 부대찌개에도 심지어 동태탕에도 고르곤졸라 피자를 끼워준다. 치즈 쬐끔 붙은 허여멀건한 종잇장 같은 게 나오는 거 뻔히 알면서도 '서비스로 피자 한 판'이라는 파격엔 이상하게 매번 속고 싶어진다. 그 점이 이 마케팅의 포인트인 듯하다. 고르곤졸라 피자란 판매자 입장에서 얇은 도우에 변변한 토핑 하나 안 올리고도 피자라는 이름이 지닌 푸짐함의 아우라를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물건너온 5음절짜리 난해한 명칭과 확 친해졌다. 길고 생소한 외래어를 입에 올릴라치면 으레 피어나는 멋쩍고 주눅든 웃음이 고르곤졸라를 말할 땐 잘 안 보인다. 고유명사에 취약한 연령층조차 매끄럽게 발음한다. 이쯤되면 업신여기게 된다. 얼마전 처음 가본 피자집에서 메뉴판을 보는데 웬일로 고르곤졸라 피자가 최상단에 있었다. 형광색 BEST 마크까지 붙었다. 평소였으면 바로 택했을 조건이었으나 주저없이 제끼고 다른 걸 골랐다. 친숙함을 평가절하의 근거로 삼는 것은 온당한가.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 곧 식사에 집중했다. 특이했다. 이탈리안인데 사찰음식 같았다. 맛집될 의욕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맛.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업주의 모든 세속적 야망을 박박 긁어 만든 단 하나의 메뉴가 고르곤졸라 피자였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_고구마를 향한 사랑은 조금 식었고(너무 비싸다) 지금은 계란에 미쳤다. 그나저나 방송자막은 왜 그렇게 계란을 악착같이 달걀로 고쳐놓는 걸까. 순우리말 권장 차원에서 그러는 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데. 암튼 계란 30구짜리 세 판을 싸게 파는 마트가 있다기에 득달같이 달려가 샀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한 판일 땐 별 생각 없었는데 세 판을 묶어놓으니 무게가 만만찮았다. 또 알다시피 계란은 잘 깨지는데 무게가 늘면 그만큼 다루기 어려워지니 파손우려가 더 높아지고, 이런 물리적 심리적 부담감이 체감무게를 대여섯배 증폭시켰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금세 팔근육이 떨렸다. 집까지는 1Km도 넘게 남았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택시? 고작 몇 백원 아끼자고 멀리 떨어진 마트까지 걸어왔는데 미쳤다고 택시를 타? 그냥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렇게저렇게 자세를 바꿔가며 몇 발짝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재래시장에서 잔뜩 산 떨이재료를 미련하게 이고지고 걷다가 건널목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몰아쉬던 엄마 생각이 났다. 몸서리가 쳐졌다. 맞은편에서 할머니가 걸어왔다. 머리에 2리터짜리 올리브오일병을 얹은 채 기적처럼 곁을 스쳐 지나가는 할머니. 왜 저런 기예를 익혀야만 했는지 너무 이해됐다. 정수리에 수직으로 가해지는 압력이 팔의 통증보다는 견디기 쉬우니까. 나도 한 번 해보려다 바로 단념했다. 90알의 깨진 계란 위에 엎어져 통곡하는 내 미래가 선히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온갖 자세들을 처절하게 전전하며 계속 걸었다. 그러다 마침내.......최적에 가까운 자세를 찾았다. 지면과 평행한 계란판의 한쪽 변을 배꼽 아래쯤에 단단히 붙이고 쭉 뻗은 양팔로 그 맞은편 변을 잡는다. 그러니까 계란판(밑변)과 내 몸통(높이)과 팔(빗변)이 직각삼각형을 이루도록 하고, 계란판 잡은 손에서 몸통 방향으로 힘을 가하며 걷는 것이다. 어떤 과학원리가 숨어있는지는 몰라도 이 자세가 그나마 가장 편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_우울감을 잊기 위해 빵을 굽는다니 소름돋게 쪽팔리는 클리셰이긴 한데 그런 걸 또 굳이 유난스럽게 쪽팔려하는 꼴도 우스웠다. 나까짓게 뭔데 감히 클리셰같이 근사한 걸 거부하느냔 말이다. 그렇게 구워낸 통밀식빵은, 꼬인 심보가 섞인 탓인지 위는 타고 속은 덜 익고 모양은 뒤틀리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실체가 분명한 결과물을 맨손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확실한 위안이 됐다. 방금 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향과 온도와 무게를 지닌 덩어리. 그걸 한입에 먹어치움으로써 감쪽같이 존재감을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 또 괴상망측하게 멋진 지점이다. 먹고 사는 건 대체로 슬프고 피곤하고 끔찍하지만 가끔 단순명쾌한 쾌감을 준다. 그래도 못생긴 빵은 이제 좀 그만 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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