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욕망을 품은 매력적인 주인공이
기승전결 뚜렷한 서사에서 뛰노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 이외의 것은 뇌가 거부한다.
상 많이 받고 심오한 멋쟁이 영화를 보면
자동으로 뭔가를 칼로 써는 상상을 하거나(주로 무, 호박)
잔다.

[퍼스트 카우]는 이상한 영화였다.
너무 졸렸고 너무 재밌었다.
꽤나 암담하고 절박한 상황임에도 인물들의 말투가 뭔가
영어회화 교재를 0.8배속으로 재생한 듯 나른하게 처져서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중반부부터는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야기에 완전히 빨려들었다.

영화는 사실상 미국판 서민갑부다.
동업시 유의할 점과 사업상 리스크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업 아이템은 바로 튀김빵.
(조리과정은 도넛 같은데 영화상에선 다들 스콘이라 함)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남자 둘이 튀겨 팔아서 대박난 그 빵을
노원구의 영화관 더숲에서 판다기에 얼른 달려가봤다.




한 개에 2천원.
귀여워.




반으로 뜯어봤다.


튀김빵답게 손끝에 닿는 느낌이 기름지다.


맛은 정말
영화에서 튀김빵을 사먹은 손님의 감상처럼
딱 엄마가 해준 맛이었다.
엄마가 집에서 밀가루에 계란 우유 설탕 넣고 식용유에 튀겨준
달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맛.

위에 뿌린 계피가루 덕에 한층 알싸하게 고급스러운.




척박한 객지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 틈바구니에서
이런 걸 튀기고 있으면 얼마나 시선집중이 될지
빵냄새는 또 얼마나 미치도록 유혹적일지.
나라도 줄서서 먹을 듯


아쉽지만 지난 일요일에 판매가 끝난 걸로 아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영화 속 음식을 재현하는
접근성 좋은 행사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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