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보름만에 맘모스빵을 꾸역꾸역 먹어버렸다. 검정콩 막걸리의 흑갈색 병 색깔이 너무 유혹적이어서 냉큼 사들고 와서는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그리고 지옥을 겪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이제 맛있고 해로운 음식을 견뎌내는 맷집이 완전 망가졌나보다. 막걸리 살 때 같이 충동구매한 생굴은 무서워서 차마 날로 먹지 못했다. 굴 먹고 지옥행 열차 탄 이웃이 요즘 너무 많다. 그러다 부엌선반 구석에 굴러다니는 올리브오일을 발견하고 마늘이랑 같이 넣고 끓여봤는데 꽤 그럴싸했다. 올리브오일 요리는 웬만하면 그럴싸한 느낌이 나서 좋다. 그럴싸한 걸 소화해줄 여유 정도는 몸에 아직 남아있어 다행이다.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배우고 싶은 기술이 머릿속을 미친듯이 빙빙 맴돌아 두개골에 벌통을 집어넣고 사는 기분이다. 너무 이러면 막상 시간날 때 아무것도 안하고 드러누워 쥬시팡만 할 텐데…빵도 술도 못 끊었는데 여기다 쥬시팡까지 다시 손을 대면 진짜 빨개벗겨서 무인도에 떨어뜨려놔야된다 나자신을

부동산 매물검색에 정신 나가서 도서관 좌석 이용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앉아있다 쫓겨났다. 결국 스터디카페행. 괜히 재테크한다고 깝치다가 피같은 쌩돈 몇천원만 더 까인 것이다. 근데 스터디카페 옆자리 퇴근남자 부동산 책이랑 자기계발서를 완전 산처럼 쌓아놓고 노트북으로 경매물건 엄청 열심히 검색하더만. 저 열정. 투지. 어흐 무서워. 얼치기 상태로 재테크 정글에 뛰어들면 저런 불꽃카리스마한테 싹 털리겠지.

생각해보니 불꽃카리스마랑 만능열쇠한테 이미 영혼 탈탈 탈곡당했네. 백만년만에 찾아온 썩은 감정 어떻게 주체하질 못하고 혼자서 순대국을 사먹었다(쌩돈 또 나감). 잊을 만하면 새삼 느끼는 점이지만 아이돌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한 직업이다. 인간의 반짝이는 순간을 무한정 복제해서 공중에 전쟁같이 뿌려대는 일이라니 내 멘탈로는 그 원본으로 살아가는 심정 짐작도 못 하겠고.

저를 믿으셔도 됩니다, 라는 말을 자신있게 하는 사람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존나 멋있는 여자다 B.
남들의 멋짐에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참 짧다는 생각이 든다.

728x90

'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나일기_220305  (0) 2022.03.05
좋나일기_220225  (0) 2022.02.25
좋나일기_220215  (0) 2022.02.15
좋나일기_220210  (0) 2022.02.10
좋나일기_220205  (0) 2022.02.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