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초조우울감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부로 마음의 평화에 대한 기대를 땅바닥에 내려놨다. 평화는 바라지도 않고 저 개노답 불초우 3대장한테 잡아먹히지 않고 적대적 공생관계 정도만 유지하다 늙어죽어도 대견한 거다, 정말 대단한 업적을 이룬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업적 달성의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냐, 몰입이다. 글과 만화의 완성도 향상에 온 정신을 쏟아붓는 것 말곤 답이 없다. 그 외에는 신경을 끊어야 한다.
그러니까 본업에 집중하라고요 남들 모임에 기웃거리면서 개짓거리 하지 좀 말고


-샌프란시스코 여행 때 썼던 일기장은 도저히 못찾겠다. 다행히 사진은 시간 순서대로 남아있으니 그거 보고 어떻게든 기억을 짜낼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게 행복했던 시기가 가물가물해지는 게 아깝기도 하지만 물건 찾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대체재를 구해다 쓰면 희한하게 그제서야 찾던 물건이 굴러들어오는 징크스가 이번에도 어떻게 좀 발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부스터샷(3차)은 왠지 소아과에서 맞고 싶어져서 집 근처의 미리 봐둔 곳을 찾아갔다. 낡고 작지만 단단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로 보아 적지 않은 오랜 단골을 확보한 것으로 짐작되는 병원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아, 하고 감탄했다. 원장님이 호빵맨처럼 웃고 있었다. 역시 소아과는 다르구나. 어린 환자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한 미소가 안면근육 전체에 깊게 배어있는 느낌. 곧이어 어린이집 선생님같이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접종 관련 유의사항을 주욱 읊어줌으로써 - 두통 발열 없으시구요~접종 후 최소 3일간은 무리 마시구요~ - 역시 소아과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 싶은 느낌을 재차 선사하였다.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면서도 묘하게 안심되고 보호받는 것 같았다. 1, 2차때처럼 접종은 순식간에 끝났다. 원장님은 접종한 자리에 아무 무늬없는 반창고를 붙여주며 혹시 더 궁금한 거 없냐고 물었다. 마침 궁금한 게 있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1, 2차접종 때 후유증이 약했다면 3차접종의 후유증도 약할 확률이 높지 않나요?”

순간 원장님의 얼굴에서 호빵맨이 사라지고 안경테가 반짝 빛났다.

“아뇨, 그건 확신할 수 없죠. 각 접종의 후유증은 독립사건입니다.”

오…!
‘확률’이라는 용어에 갑자기 어린이집 스위치가 꺼지고 수학과외선생 버튼이 눌려버린 원장님.
말투까지 약간 알파고처럼 돌변한 게 너무 웃겼고 확률통계 숙제해가야 될 것 같았다.
어쨌든 나의 3차 후유증은 1, 2차와 비슷했다. 4차 독립사건은 겪을 일 없기를 빈다.


-올해 건강검진은 유달리 무서웠다. 치명적인 무언가가 나올 것 같았다. 죽도록 가기 싫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솔직히 ‘죽도록’이란 말 뒤에 붙는 일은 대체로 죽는 것보다 낫다. 검진도 그렇다. 눈 딱 감고 예약걸고 후딱 다녀왔다. 검진전문기관에 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코앞의 동네병원을 선택했다.
*이 병원 왜 이렇게 친절하지? 하도 친절해서 나는 내가 죽을병에 걸렸거나 이미 죽어서 천당의 수납계에 온 줄 알았다.
*왜 키가 조금씩 크고 있지?? R은 혹시 농사를 지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하는데 농사지어서 키컸다는 인간은 일평생 본 적이 없다. 너무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가 싶긴 한데…하여간 기괴한 일이다.
*굵고 질좋은 핏줄로 거듭나려면 대체 무슨 수련을 해야 하는 거지??? 피뽑거나 링거맞을 때마다 혈관을 못 찾아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병원에 장기투숙하며 양 팔뚝에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살 늙고 병든 내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결국 손등으로 수면마취액을 주입하게 되었는데, 이게 꽤 아팠다. 강한 통증이 손등부터 혈관을 따라 서서히 치고 올라왔다. 다행히 어깨쯤 올라왔을 때 기억이 끊겼고, 눈 뜨니 회복실. 수면내시경 괴담에 나올만한 이상한 짓 안하고 검사내내 쥐죽은듯 있었다 한다(과연 사실일까).
*딱히 심각한 문제는 없단다. 위가 늘 걱정이었는데 의외였다. 내시경으로 촬영한 내장사진을 인쇄해주는 건 더더욱 의외였다. 어쨌든 감사한다. 좋은 기념사진이다. 해상도도 높고 색깔도 선명하고 구불구불한 주름이 아주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 얼마전 인터뷰때 찍었던 얼굴사진보다 낫다. 기사에 들어갈 내 얼굴을 싹 다 이 내장사진으로 대체하고 싶다. 안 될까? 이번 책 주제랑도 훨씬 잘 어울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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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2022.04.29 10:05

    비밀댓글입니다

  2. 익명 2022.04.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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