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복분자덩어리를 밥 대신 먹었다. 꽁꽁 얼어있어서 씹히기나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약간의 힘에도 잘 부서졌다. 복분자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맛이 났다. 이 맛을 극혐하는 아버지는 복분자를 벌레취급한다. 거의 칡 잎사귀와 동급으로 역겹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나중에 칡잎도 한번 먹어봐야겠다. 복분자 생과 특유의 맛, 완전 내 취향.

맛 표현할 때 '설명하기 어렵다'고 해버린 건 명백한 업무태만이 아닌가 싶어 계속 고민하다가, 아는 맛과의 연결고리 하나를 겨우 떠올렸다. 고급 외제쿠키맛. 단맛 빠진 로터스쿠키의 풍미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공감받지 못할 소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인들은 이제 내 맛평가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쟤는 뭐 맨날 다 맛있대, 이러고 안 듣는다. 아니 진짜로 맛있는 걸 어떡하냐 그럼.

복분자 표면이 갑자기 너무 징그러워보여서 얼른 먹어치웠다. 거울을 보니 가관이었다. 뻘건 입과 뻘건 손으로 검붉은 덩어리를 뜯어먹는 것이 열흘 굶주렸다 사냥에 성공한 원시인 같았다. 그런데 입에 물든 복분자 과즙이 완전 피빨강은 아니고 꽃자주색. 어디서 많이 본 꽃자주색. 아. 어디서 봤는지 이번엔 바로 떠올랐다. 베네틴트 색깔이다. 엽기적인 그녀 때 전지현이 썼다 하여 엄청나게 유명해진 바로 그 틴트.

씨발 돈날렸다. 생애 첫 고가화장품을 발라본 소감치곤 쓰라린 것이었다. 내 황토색 피부톤과 틴트 색은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뭐 피부만 문제였겠냐마는 넘어가도록 하고...다행히 중고시장에 내놓자마자 팔려서 직거래장소로 갔는데, 구매희망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뿜을 뻔했다. 존나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온 것이다. 할말을 잃고 그분의 황토색 얼굴을 바라보았다.

드럽게 안 어울릴 거라고 경고를 해줘 말어 망설이다가, 자본주의 소인배답게 영업용 미소와 함께 얼른 돈 받고 틴트를 넘겼다. 득템의 기쁨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선 그분. 나와는 달리 기적의 황금손이라 틴트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했을지, 아님 실망하고 재판매를 했을지, 그렇다면 그 틴트는 중고시장을 돌고 돌아 결국 누구의 손에 정착하여 명을 다했을지, 꽃자주색 복분자를 먹다 말고 궁금해졌다. 

검색해보니 베네틴트는 여전히 잘 팔리는 듯. 반도에 복숭아 피부들이 많은 모양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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