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장터국수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영업하는 곳이 남아있더라. 너무 반가웠다. 초등학생 때 다니던 치과 건물 1층에 장터국수가 있었다. 치료 끝나고 거기서 가끔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장터국수 간판만 봐도 뜨겁고 찝찔한 국물과 치과 냄새와 드릴 썩션 소리에 오감을 두들겨맞는 것 같았다. 그 느낌 여전했다. 신기하고 이가 시렸다.



_말로만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던 감자탕집에 드디어 가봤다. 생각보다 한적했다. 팔천원짜리 뼈해장국을 먹었는데 고기양은 적었지만 국물 고기 배추김치 무김치 모두 내가 생각하는 국밥집의 이데아에 가까운 맛이었다. 접객도 적절했다. 공기밥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운을 떼자마자 신속히 처리해줬다. 날씨마저 좋았다. 활짝 열어둔 매장 입구로 훈풍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봄바람 맞으며 돼지등뼈를 젓가락으로 힘껏 비틀어 짜개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꿈결같아 슬퍼질 지경이었다. 반쯤 먹었을 때 등산객 몇 팀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매장이 꽉 찼는데 나처럼 단품 뚝배기 먹는 사람 아무도 없고 죄다 대중소가 붙은 메뉴들 그것도 웬만하면 다 대짜에 떡수제비감자사리 추가는 기본이고 소주도 쉴새없이 추가했다. 다 먹고 계산하고 신발 찾아신는 내내 여기저기서 등뼈추가를 외쳤다. 뼈추가는 만구천원이다. 감자탕집의 등산객 객단가란 정말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_대형고깃집을 볼 때면 저게 과연 유지가 잘 될까 괜히 걱정하게 된다. 내가 고기굽는 식당에 잘 가지 않으니 왠지 남들도 다 안 간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은데 너무 자기중심적 착각이지 싶다가도 실제로 그 왜 건물 외벽에 장독대 막 박혀있고 소돼지가 그려진 몇층짜리 고깃집들이 많이 사라진 걸 보면 마냥 근거없는 착각은 아닌 듯하고. 그러다 우연히 외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끼리 하는 얘길 주워들었다. 사람들이 이제 예전만큼 고기 구워먹으러 다니는 걸 선호하지 않는단다. 케첩의 원조 크래프트하인즈가 건강식 선호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몰락하여 이 기업의 대주주인 워렌버핏이 3조를 손해봤다는 뉴스가 돈다. 그런 시대인가보다. 



_밥도 잘 안해먹는 주제에 뭔 배짱으로 잡곡을 사재기했는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묵히느니 마른팬에 볶아서 과자 대신 씹어먹기로 했다. 두어 번 씻고 30분쯤 불린 다음 전체적으로 황갈색이 돌 때까지 약불에 볶았다. 타지 않게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어줘야 하는 게 약간 성가셨지만 의외로 즐거움이 컸다. 곡물이 열에 은근히 익을 때 나는 특유의 향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좋았고 중간중간 팝콘처럼 하얗게 튀겨지는 애들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이 행위를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다 볶은 곡물을 밀폐용기에 넣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왔다가 초미세먼지 농도가 600 넘게 치솟은 공기청정기를 보고 기절초풍했다. 요리는 진정 생명을 살리고 갉아먹는 행위임을 실감했다. 볶은 곡물은 정말 맛있었다.



_쇼핑몰에서 서리태 사려다 너무 비싸서 중국산을 검색했는데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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