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통이 날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렇게까지 티 낼 필요는 없었는데 참지를 못해서 기어이 몇 사람의 기분을 잡쳐놨다. 내가 뱉은 말에 상대의 낯빛이 변하는 순간이 수시로 떠올라 괴롭고 우울하다. 우울감 심할 때 남의 잘된 작업물을 보면 진짜로 죽도록 우울해지니까 되도록 피하는데 어제오늘은 뭔 날인지 고립감과 위기감까지 질식해 죽을 지경으로 심해져서 최근 입소문난 어떤 작품을 냅다 몰아봤고, 우려대로 기분이 완전 쑥대밭됐다. 나는 쓰레기 좆방맹이만도 못한 무능력자고 내가 손대는 건 죄다 망할 것이다. 이런 유치한 파국적 사고의 종착지는 단 하나. 지뢰찾기다. 손대는 족족 폭탄이 터져도 몇번이고 새출발이 가능한 이 미친 희망의 게임에서 나는 이제 벗어나기를 포기했다. 총 게임횟수 만 판이 목전이다. 저 숫자는 자기혐오의 무게다(단위는 근이 좋겠다). 나 자신이 너무 지겹고, 이렇게 살면 저 폭망의 자기예언이 실현될 게 뻔해 너무 무섭고 떨리는데, 한편으로는 게임성에 감탄하는 마음도 있다. 정말 잘 만든 게임 아닌가? 간결하며 철학적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숫자힌트를 잘 취합하면 네모판에 흩어진 99개의 지뢰 가운데 90개 이상을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 노력하면 대부분의 난관이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개 중 하나를 그냥 냅다 찍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 내 힘으론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50%의 확률로 생사가 갈리는 순간. 직전까지 암만 잘했어도 운 없으면 끝장이라는 거. 요컨대 지뢰찾기는 능력으로 해나갈 수 있는 영역과 도박의 쪼는 맛이 더없이 절묘하게 결합된 인생의 축소판이다! 쓰레기가 되어가는 길에 이거라도 깨달아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나저나 게임중독과 알콜중독 중에 그나마 전자가 건강에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게임도 보통일이 아니다. 허리랑 눈깔이 세트로 빠지게 생겼다. 차라리 술이 낫겠다 싶어 다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뢰찾기하는 주정뱅이가 됐다. 아무데나 막 눌러서 지뢰가 펑펑 터지고 승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신이 돌이킬 수 없이 썩어버리기 전에 지뢰찾기의 원산지나 한번 밟아보고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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