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다 써서 넘겼다. 홍녀도 끝이 보인다. 마냥 기쁘지 않을 거란 예상은 했다. 두 일에서 해방되는 날을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줄곧 두려워했다. 일의 끝이란 각종 신체적 육체적 고통과 입금의 끝을 의미하기에. 하지만 두렵기로 치자면 귀한 자유의 시간을 같잖은 일로 펑펑 써버릴 스스로와 대면하는 일을 따라올 게 없다. 마감 때는 시발 내가 이것만 끝내면 당장 100개국어 마스터하고 맨발로 부산까지 마라톤해버릴 거라며 이를 득득 갈았건만 역시나 어영부영 뒹굴면서 유튜브만 보고 있고…자기계발 동기부여 재테크 성공사례 따위를 열심히 골라보고 있는데 가만 보면 이게 더 나쁘다. 본질적으로는 시간낭비와 다를 바 없는 짓인데 생산적으로 산다는 착각에 빠지기 딱 좋다는 점에서. 멍하니 영상물을 시청할 때 뇌의 인지기능이 제일 빨리 감퇴된다더만. 한심함을 견딜 수 없어서 홧김에 뛰쳐나가 부스터샷 맞고 왔다. 백신 맞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그 핑계로 또 일 안 하고 침대에 늘어붙을 게 뻔하니 이왕 누울 거 백신접종이라는 명분 위에 드러눕는 게 자괴감이 덜할 것 같아서. 그나마 최근 내가 홧김에 저지른 짓 중에서는 제일 현명했다. 버려지는 시간에 육체적 고통이 추가되자 한결 덜 아깝게 느껴진다.

‘XX분들 비하하는 거 아닙니다!’라고 속 보이는 방어막을 쳐놓고는 지역, 성별, 소득수준에 대한 차별의식을 집값과 엮어 정당화하는 부동산방송. 전쟁통에 몇백명이 죽고 다쳤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얼마 안 죽었고 주가가 막판에 반등했다는 소식을 깔끔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는 주식방송. 이런 걸 하루종일 들으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일단 나는 심란해졌다. 돈의 흐름에 집중하지 않고 팔자좋게 심란해져버린 나는 그들에 따르면 부자의 마인드 장착에 실패한 인간이겠지. 그렇다고 내가 뭐 딱히 선량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푹 썩은 속물인데, 하여간 이도저도 아니고 애매하게 덜 썩은 양심이 군데군데 알박기를 하고 있어 골치가 아픈 것이다. 피구할 때 반쯤 금밟고 서있는데 아직 아무도 나를 발견 못한 불편하고 조마조마한 기분. 경기에 확 뛰어들지 아예 금 밖으로 나가버릴지 결정은 좀 미뤄두고 우선은 찌꺼기 양심이라도 긁어모아 많은 희생이 없기를 빌어야겠다.

방금 과거의 수치스런 기억이 떠올라서 벌떡 일어났다 앉았다. 근데 그걸 누가 지워주겠다고 하면 거절할 것 같다. 기억은 남기고 벌떡 일어나는 증상만 없애고 싶다.

이번에야말로 집을 싹 뒤집어엎고 샌프란시스코 여행수첩을 찾아내서 남은 여정을 기록하고 말 거다. 하지만 과연 집을 뒤엎을 수 있을까? 청소 생각만 해도 너무 싫어서 호흡이 가빠지는 내가!? 다방면으로 무능하지만 그중 최악이 청소능력이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치우다 말고 어디로 분류해야할지 모르겠는 물건을 든 채 방 한가운데 멍하니 서있는 걸로 시간 다 잡아먹는다. 싹 갖다버릴까도 했지만 전에 한번 그랬다가 크게 후회했다. 아니 뭘 꼭 버리고 나면 귀신같이 쓸 일이 생기더라고. 청소업체에 의뢰하면 5만원에 끝내주게 잘 치워준다던데, 그래도 집 상태가 이 지경이면 곤란하지 않을까. 찾아야 할 물건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 남에게 맡기기 힘들 것 같고. 업체 직원이 오기 전에 남부끄럽지 않게 치워놔야 할 것 같은데 그럴 거면 그냥 내가 치우는 게 낫지 싶고. 암튼 누가 치우든 치워야지 이건 사람 사는 집이 아니다.

‘맘모스빵 폭식’에 이어 ‘단팥빵 폭식’하신 분들까지 여기 유입되시고…그밖에 ’몸이 않좋나’와 ‘백신 맞고 이빨이 아파요’ 등도 마음에 박힌 키워드. 질병과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괴로워진다. 절박한 검색을 통하여 이 블로그에 흘러들어온 그들이 아무런 해결책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더욱 죽을맛. 나도 멋쟁이 지식인이 되고 싶지만…‘몸이 않좋나’에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빨 통증은 비전문자로서 부디 일시적인 것으로 지나가길 빌겠고 폭식에 대해서는 엊그저께 또 맘모스빵을 잔뜩 먹은 입장으로서 할말이 없네. 부디 전문가의 도움을 적절히 받아가며 무탈한 삶 최대한 이어나가시기를. 이것저것 빌어야 할 게 참 많다. 인간이 육신을 달고 사는 한 기복신앙은 영원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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