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_매끼 고구마를 배불리 먹고 있다. 일주일 내내 먹었는데 전혀 안 질리고 계속 먹고 싶다. 캥거루 고기를 먹었다. 씹는 맛은 말과 비슷했는데 말보다 약간 더 거슬리는 육향이 났다. 남은 부분을 잘게 찢어 대파와 매운 고추를 썰어넣고 캥거루 육개장을 만들었다. 아주 맛있었다. 인근 마트에서 돼지껍데기 한근을 1000원에 판다. 내가 아는 중에 가장 싼 고기라 종종 한두 팩 사오는데 어젠 웬일인지 800원이었다. 다섯 팩 샀다. 흙 묻은 무 세 가마니를 순식간에 세척했다. 어쩌면 육체노동에 꽤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4-5시간밖에 못 잤는데 잠이 부쩍 늘었다. 6시간씩은 꼬박꼬박 채운다. 친구들에게 고구마를 줬다. 기뻐해줘서 기뻤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순간이 너무 좋다. 그저께는 지하철 옆자리에 도마뱀이 든 수조를 소중히 끌어안고 가는 아이가, 어제는 지네매니아 청년이 앉았다(내리기 직전까지 계속 지네 사진을 찾아보고 휴대폰 배경화면도 왕지네였다)



bad_좁은 집에 고구마가 너무 많다. 현관, 부엌은 물론 침실에까지 고구마가 굴러다닌다. 집구석 어딜 디뎌도 흙모래가 버석버석 밟힌다. 옷 갈아입다 뱃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간 먹은 고구마가 고대로 거기 붙어있었다. 다이어트식품이고 뭐고 실컷 처먹으면 아무 의미없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올해 고구마 풍년이라고 완전 똥값됐다고 하는 버스 뒷좌석 할머니들의 대화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손목과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 이것들이 시한부의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앞으로 꾸준히 의식하며 살게 되리라는 예감에 울적해졌다. 휴대폰 지문인식이 잘 안 된다. 설마 지문이 닳은 건가. 아니 뭘 얼마나 일했다고...누가 보면 평생 김밥 말아 모은 돈을 기부한 할머니인줄. 근데 한번 닳은 지문은 회복이 불가능한가. 왜 무채색에 주머니 달린 수면바지는 없는 건지 궁금했는데, 있었다. 비쌀 뿐이었다. 형광원색 꽃무늬 수면바지 값의 두 배였다.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꽃무늬를 고를 때 세상 다시 없을 굴욕감을 느낀다. R과 처음 인도커리를 먹었던 가게가 폐업했다. 시간이 없다. 진짜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관리에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글에 대한 근심걱정이 날로 깊어만 간다.

 

다시 good_한번 닳은 지문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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