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요만큼 일해놓고 지쳐야만 하겠니. 워커홀릭 같은 거 돼볼 생각은 조금도 없는 거니 나자식아. 생애주기상 내가 앞으로 멀쩡하게 노동할 수 있는 기간이 이제 그렇게 길지가 않아.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내 세대는 잘만 하면 평균수명이 130살쯤 될 거라 하네. 암도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정상세포로 되돌리는 치료법이 상용화될지도 모른다 하네. 암으로 가족을 잃어본 입장으로서는 혁신적인 암 치료법이 나왔다는 소식에 착잡하고 애통해질 수밖에 없다. 이왕 평균수명 늘릴 거라면 죽은 사람의 티끌만한 DNA만으로도 그를 되살리는 기술이 상용화되는 날이 와주었으면 한다. 아 뇌졸중으로 인해 사멸된 뇌세포를 되살리는 기술도 부디 빠른 시일내에 나와주었으면. 소멸을 거부하는 인간 욕심으로 인해 분명 새로운 지옥도가 펼쳐지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그리 오래 존속할 가치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지옥 속에서라도 꼭 붙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망치는 건 나름의 간절한 사정이 있는 이런 이기심이겠지. 아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빌런은 거창한 게 아니라 나 같은 인간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걸.

-꿈에서 애를 낳았는데 그 애를 예전 먹는존재 출판 담당자가 받아줬다.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정황상 애아빠는 없고 나 혼자 자가번식한 것 같다. 갓 태어난 시뻘건 애를 받아안고 와씨 내 인생 이제 어떡하냐 얘를 이제 낳아서 어느 세월에 사람꼴로 키워내냐 한탄하며 눈을 부릅뜨니 익숙한 천장. 아아 진짜, 진짜, 최근에 이렇게까지 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꿈에서 아이의 탄생을 순수하게 기뻐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아직까지 조금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는 끝끝내 만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거야 날 닮았다면 내맘 알겠지 내자식아

-아보카도가 구입 한달만에 더할 나위없이 완벽하게 익었다. 행복.

-OO이가 2년 전에 선물한 동남아 똠양꿍라면을 오늘에야 끓여먹을 결심을 하고 뜯었다가 기겁했다. 면발이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라면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음을, 면이 썩으면 얼마나 처참하고 역겨운 꼴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라면이 의외로 좋은 비상식량이 아니라더니 진짜 그러네(물 끓여야 함, 생각보다 짧은 유통기한). 통조림. 통조림이 짱이다. OO아 미안하다.

-어쩌면 수 년 뒤 부산에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부산은 너무나 사랑하는 도시이고 구미 가기도 좋고 암튼 생각만으로도 즐거운데…문득 몇 년 전 부산에 갔다가 너무너무 활기차고 사교성 좋은 노인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부산 지리를 잘 모르는 내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득달같이 다가와서 길안내를 해준 할아버지와 막 출발한 버스에 와호장룡처럼 달려들어 올라탄 할머니. 죽지 못해 비실비실 살아가는 울동네 어르신들과 확연히 다른, 자아효용감이 넘치고 기운찬 몸짓을 보고 와 이게 뭔가 싶었지. 이 얘길 부산 출신에게 했다가 그런 얘긴 생전 처음 듣는다는 뜨악한 반응에 내가 귀신에 씌었던 건지 아님 하필 그때 약빤 노인들이 내 앞에 많이 출현했던 건지 알 도리가 없게 되었다.
모르겠다 어르신들은 의료혜택 알차게 받으면서 잘 사시면 좋겠고, 나는 부산 차이나타운 러시아거리 너무 가고 싶다.

-지난번에 주문한 미군화는 내 인터넷 쇼핑 역사상 최대의 실패작이자 희대의 쓰레기 신발이었다. 인체공학적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만든…아니 그 차원을 넘어 구매자를 고문하겠다는 확고한 악의를 가지고 만든 제품 같았다. 택배 받고 바로 신고 8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는데 군화의 입구부분과 다리가 접촉된 부분이 혼절할 정도로 아팠다. 고통이 사라지는 유일한 순간은 점프스키 활강 자세를 취할 때였다.







728x90

'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나일기_220220  (2) 2022.02.20
좋나일기_220215  (0) 2022.02.15
좋나일기_220205  (0) 2022.02.05
좋나일기_220130  (0) 2022.01.30
좋나일기_220125  (0) 2022.01.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