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겪는 문제의 원인은 나도 알고 A도 알고 다 알았다. A는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좋아했다. 현재 A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 둘은 누가 봐도 상종 못할 부류였다. 하지만 A는 자꾸만 정을 줬고 그들은 그걸 새새끼처럼 처먹곤 더 달라며 A를 쥐어짰다. 너 같으면 어떻게 할 거야? A의 물음에 답했다. 일단 절대 안 만날 거고, 계속 귀찮게 하면 녹취 뜬 거 보여주면서 고소한다고 아주 거품물고 팔팔 날뛸 거야. 그쪽이 먼저 질려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듣던 A가 말했다.


그러면 외롭잖아.


할말이 없어졌다. 너는 안 외로워? 외로울 때 어떻게 해? A는 알까. 아 당연히 나도 사람인데 외롭지, 외로운데, 사람 때문에 귀찮고 괴로운 게 외로운 것보다 훨씬 싫으니까 어느 시점부턴 그냥 별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안 만나지더라고. 우리가 지금 이 질문과 답변을 몇 번째 고대로 되풀이하고 있는지를. 한동안 잠자코 있던 A가 말했다. 너는 참 쿨하다. 하긴 옛날부터 쿨하고 시원시원했지 너는. 귀를 의심했다. 이건 새로운 패턴이다. 아니 내 대답이 쿨해? 딱 봐도 어디에 크게 데인 유리멘탈 인간 특유의 호들갑스런 방어태세 아닌가. 애시당초 내가 인간관계 앞에서 쿨하고 시원시원하게 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관계에든 질척임과 망신과 후회의 지뢰가 점점이 박혀있다. A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우리는 서로의 정신과 육체가 특출나게 추했던 시절을 함께 겪었다. 아.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A가 이런 접대성 왜곡을 하는 것도 같다. 미친 쿨은 무슨 아까 한참을 말했잖아 나 관계쓰레기라고. 아냐 너는 늘 멋졌어. 멋지기는 씨발 솔직히 네가 백만 배는 더 멋지다. 아니지 진짜 멋진 건 너지. 아니라니까 너라니까. 너 진짜 멋지다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게 문제다. 가뜩이나 없는 친구마저 적어지는 처지에 서로 아픈 구석이 어딘지를 너무 잘 아니까 필사적으로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 핥아주고, 그러다 덕담배틀 일어나고, 하다하다 결국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멋짐대폭발사태로 치닫는 것이다. 멱살잡을 기세로 서로의 멋짐을 찬양하던 우리는 뒤늦게 신성한 술상머리에서 이게 다 뭔짓인가 싶어 조용히 술을 퍼마시고 콩나물처럼 꾸부러졌다.


돌아오는 길은 한숨으로 뒤덮였다. 내 이미지를 터무니없이 고평가하는 것에 화들짝 놀라 그걸 깎아내리는 데에만 급급해서 A의 고통과 외로움엔 신경도 안 썼다. 참 나답게 철딱서니없는 행동이었다. 해서 귀가내내 육성으로 아이고! 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어뜯는 요란한 퍼포먼스를 하긴 했는데, 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의 원인인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을 대충 정리하면 1) 진정한 사랑과 관심과 시간을 꾸준히 투입해주는 사람 만나기 2) 체념. 나같은 2지망에게 1지망의 A가 원하는 고급자원이 있을 리 있나. 설령 있다해도 내가 그걸 기꺼이 내어줄 인간인가. 모르겠다. A와 내가 서로 친하기를 원하는 한, 아마도 우리는 잊을 만하면 만나서 같은 질문 같은 답을 하고 서로의 멋짐을 칭찬하는 데 머리를 쥐어짜다 탈진해 쓰러지고 다음날 쑥스럽게 헤어지겠지. 그 시간동안만이라도 다른 골치아픈 걸 잊을 수 있다면 솔직히 그게 어딘가 싶다. 내가 해도 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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