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4일_지뢰찾기하다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서 냅다 뛰쳐나왔다. 우울하게 방황하다 습관처럼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가게들이 죄다 문닫은 골목은 회색으로 죽어있었다. 더 우울해졌다. 동네 재래시장에 갔다. 한적하고 규모도 작고 이렇다할 명물이나 매스컴 탄 맛집도 없고 상인들마저 약간 내성적인 시장인데(그래서 좋아하지만) 설은 설이었다. 온 시장통이 사람들로 새까맣게 북적였다. 야 다행히 여기도 명절 특수를 누리는구나. 잘되는 동네 자영업을 보면 기분이 좋다. 반찬집과 고깃집과 떡집이 특히 붐볐다. 갓 뽑은 가래떡을 뚝뚝 떼어 시식으로 나눠주는 손길과 정신없이 전 부치는 뒤집개에서 엄청난 흥이 느껴졌다. 그런데 (당연히도) 모든 점포가 잘되는 건 아니었다. 빵집과 속옷가게는 그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질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속옷이야 두고두고 팔면 된다쳐도 빵집은 같은 음식장사하는 입장에서 속 좀 타겠다 싶었다. 그런데 맘모스와 상투과자와 소시지피자빵과 잘게 썬 양배추와 엉성한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갖춘 전형적인 시장빵집에 인파가 몰리는 걸 본 기억이 있던가. 발렌타인 크리스마스같은 시즌에 붐벼터지는 건 대개 시장 바깥의 '베이커리'다. 그래도 시장빵집 특유의 예스러운 빵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은 분명 존재하니 내 걱정이 무색하게 사시사철 큰 기복없이 갈지도 모르겠다. 시장 하늘을 덮은 캐노피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설맞이 가래떡썰기대회 제기차기대회' 진지하게 나가볼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버렸다. 어릴 땐 저딴 걸 대체 누가 나가냐며 코웃음을 쳤는데 시발 그게 미래의 나였어. 신청일자가 지났음에 슬퍼하고 안도했다.





5일_한번 명절 시장맛을 보니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또 나왔다. 마침 시사인의 신년기획 [대림동에서 보낸 서른 번의 밤]http://daerim.sisain.co.kr/도 읽었겠다 대림중앙시장에 가기로 했다. 12번 출구 밖으로 나가자마자 검은 인파가 먹물처럼 흘렀다. 검은색 패딩은 동북아시아인의 겨울철 유니폼 같다. 나도 먹물 한방울. 냉큼 섞여들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추석의 중앙시장을 봤다. 골목 가득 넘쳐나는 월병 구경하는 게 너무너무 즐거웠다. 설날에는 어떤 풍경일지 궁금했다. 둘러보니 의외로 월병 같은 시그니처 품목이 눈에 뜨이지는 않았다. 스팸이나 과일 같은 한국적 선물세트와 중국술 세트, 그리고 보리수나무 열매로 만든 열쇠고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보리수열매에 관심이 갔다. 먹어만 봤지 장신구로 만든 건 처음 봐서 좀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돈없는 처지에 판매자에게 희망을 주기 두려워 멀찍이서 기웃거리기만 했다. 흥미를 보이며 다가와 열매를 만지작대는 객에게 싹싹하게 효험을 설명하던 판매자는 객이 떠나자 다시 열매들을 가지런히 정돈했다. 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쓰다듬던 그 손이 마음에 남았다. 아무래도 사올 걸 그랬다. 가족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여유로운 표정의 부모와 볼 통통한 애들이 손에손에 호떡이며 꼬치를 들고 웃으며 가고 있었다. 날 따뜻한 연휴라는 게 이렇게나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중국말이 많이 들렸지만 생각보다 한국말의 비중이 높다고 느꼈다. "한국인은 1등시민, 조선족은 2등시민, 한족은 3등시민" "한국에서 '언어(한국어)'는 일종의 권력이고 자산이 된다"는 기사내용이 생각났다. 안쪽길로 더 들어갔다. 고수 당콩 오리알 영채 두리안 그리고 조그만 파란무와 그을렸는지 절였는지 삭혔는지 모를 새까만 사과같이 익숙하고도 생소한 식재료들이 줄지어 있었다. 꽈배기 호빵 만두를 비롯해 닭 메추리통구이 돼지의 온갖 부위로 만든 요리들도 존재감 여전했다. 이번엔 도가니로 추정되는 부위를 하얗게 쪄서 파는 곳이 많았다. 거깄는 내장이란 내장들 종류별로 싹 다 사오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










6일_연휴 막날의 시장이라면 명절 당일 뼛속까지 상혼을 태우고 황량하기 그지없을 터였다. 하지만 재래시장 폐인 돼버린 나는 어디라도 가야했다. 청량리도매시장에 붙은 통닭골목은 왠지 연휴에도 성업중일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내림




어디야




어디냐고



결국 못찾았다. 통닭은 뼈한조각 못 보고 황량함만 스케일 크게 느끼다 돌아가게 생겼다. 그런데 어쩌다 접어든 약초골목에서 의외의 활기를 접했다.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상인과 객들로 제법 북적였다. 덩달아 들떴다가......곧 슬퍼졌다. 객의 태반이 고령자들. 즉 이 골목의 활기는 노인의 육체적 고통이 연중무휴임을 의미한다. 행자는 청량리를 싫어했다. 노인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생의 에너지에 질식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 청량리가 싫지 않다 말하며 이 일대에 예정된 개발호재 주워들은 얘기 몇 가질 덧붙였다. 행자는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네.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까. 조만간 통닭골목 다시 찾으러 와야겠다.




 







728x90

'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고살기  (0) 2019.02.18
도태의 길목에서  (0) 2019.02.11
사람  (0) 2019.02.01
우리의 문제  (0) 2019.01.31
테러집단과 지뢰찾기와 광기의 불완전연소  (0) 2019.01.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