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끝에 '자'자를 붙여 사람구실하게 만드는 짓을 좀 즐겨한다. 출근자, 퇴근자, 식사자, 생일자. 아 특히 생일자. 생일자 너무 좋다. 어감이 뭔가 되게 바보같이 비장해. 그럼 장애자는. 우리 땐 애자애자거리면서 낄낄대는 싹수 노란 애들이 천지로 깔렸었는데 장애'인'이 언중에 완전히 뿌리내린 지금은 분위기 어떤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공적언어로도 욕설로도 기능하지 못하는 불편한 유령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길거리에서 거리낌없이 장애자 운운하는 건 십중팔구 늙은 차별주의자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환자는. 운전자는. 정신병자는. '자'보단 '인'이 더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기는 한데 밥먹듯 쓰는 이 단어들을 노동인 환인 운전인 정신병인으로 고치자는 주장은 본 기억이 없다. 놈 자者자에 숨겨진 멸시와 배척의 발톱은 부정적인 명사와 들러붙었을 때 팍 튀어나오는 것 같다, 고 말하려니 환과 정신병이 애매하다. 심신이 아픈 건 인생 부정적인 이벤트의 대표격인데 환자랑 정신병자가 딱히 멸칭은 아니지 않냐, 고 하기엔 또 좀 그렇다. 환자는 아슬아슬하나마 중립의 위치에 놓였다쳐도 정신병자는 준욕설이다. (야이 환자야! vs 야이 정신병자야! - 그래서 정신병자 대신 공적영역에 나서는 말은 대개 '정신질환/심신미약자') 병. 환. 장애.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점은 다 같은데 뒤에 붙는 자 자의 느낌은 왜 이리 다른가. 그러면 이 의문의 발단이 된, 노숙자는 어떤가. 노숙인이라는 수정어가 나온 마당에 노숙자를 쓰자니 못할 짓 같은데 아직 일상어로 느껴지지 않는 노숙인을 쓰는 건 뭔가 근질근질하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그냥 숙과 자가 부딪혀 생긴 된발음 '숙짜'를 포기하기 아까워 이러는 것 뿐인가 싶기도 하고. 골치가 아프다. 여행기 속 시간의 나는 내 경로를 막아선 노숙자들에 겁을 먹고 걸음을 멈춰버렸고 현재의 나는 가뜩이나 없는 시간에 노숙자를 쓸지 노숙인을 쓸지(+이 외에도 수많은 고민들로) 망설이느라 글 진행을 못하고 있다. 답답해 죽겠다. 빨리 다 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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