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에 나앉는다’는 표현을 자주 생각한다. 가끔 소리 내어 말하기도 한다. 길에 나앉는다. 길바닥에 나앉는다.

- 12시에 행사장에서 밥을 먹고, 2시까지 다음 일정이 있는 장소로 가면 시간이 딱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2시 반이 넘어가도록 행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1시가 되어서야 겨우 음식 세팅 시작. 일찌감치 줄을 선 사람들은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과 그 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운영진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1분에 한번씩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1시 10분경 참지 못하고 운영진에게 다가가 죄송한데 몇 시쯤부터 음식을 살 수 있냐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그 대답이 “지금 사실 수 있는데요?!” 맙소사. 다들 양쪽으로 갈라서서 한쪽은 왜 시작을 안 하지...다른 한쪽은 왜 안 사먹는 거지...이렇게 묵묵히 고뇌하고 있었던 건가. 하긴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들이 행사를 열면 이런 해프닝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된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노하우와 금전으로 이루어지는 고도의 행위예술이라는 생각을 갈수록 자주 하게 된다.

-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 너무 재미가 있고, 재밌지만...이제는 시청을 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엔 남의 작품을 오랫동안 멀리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와 공부해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에 쓰디쓴 보약을 코 막고 삼키듯 이것저것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재밌어서 자발적으로 보게 되고, 슬슬 불건전한 중독 단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렇게 돼버렸다. 반년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일. 아무것도 하기 싫고 드라마만 무한정 보고 싶다. 남이 만든 세계관에 영영 취해있고 싶다. 가상에서 현실로 내쳐지는 순간의 공허함이 두렵다. 가장 두려운 건 내 세계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과 직면해야 한다는 것. 다들 너무해. 너무 잘해. 너무들 해 진짜.

- 질투에 대한 글을 썼고 겁도 없이 ‘질투왕’을 자처하였으나 실은 거짓말이다. 나는 질투하지 않는다. 질투는 능동적이다. 질투의 대상을 해치고자 하는 명백한 공격성을 내포한 감정이다. 나같이 게으르고 소심한 수동형 인간은 질투 못 한다. 그 귀찮고 위험부담 큰 열혈짓을 뭐하러 합니까. 훨씬 조용하고 폐쇄적인 선택지, 열등감이 있는데. 남을 공격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내 멘탈만 묵묵히 갈아먹는 감정! 뒤탈 없고 간편하고 얼마나 좋아. 나는야 열등감왕. 음 이건 별로. 벌써 질투왕보다 한 글자 더 늘어나서 리듬감이 확 굼떠지고 어감도 후져졌어. 열등해 증말.

- 어마어마한 귀찮음을 딛고 일어나 도서관에 나와서 죽지못해 일을 하다 두어 건의 통화를 하고 기분이 나아졌다. 역시 나의 비관에는 햇빛과 운동과 사람이 약. 물론 세 번째 것이 종종 독약이 돼버려서 곤란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기에, 더더욱 사람과 호의를 주고받는 순간이 있음에 감사한다. (합장 이모티콘) 근데 나 요즘 이모티콘 너무 많이 쓴다. 상대가 내 말투로 인해 불쾌해질 여지를 최소화하고 호의를 최대한 증폭시키고자 동글동글 귀여운 이모티콘을 줄줄이 엮어 답하곤 하는데, 종종 그 과대포장된 상냥함이 너무.....아으 몰러 그냥 가끔 그 이모티콘들 확 다 구워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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