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묵향동후 소설을 이 악물고 읽는 데는 이런 심리도 작용하는 듯하다
초반의 낯선 용어와 설정 홍수를 견뎌내면 대략 2/3 지점부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쏟아짐 -
지금까지의 묵소설 독서체험은 다 이랬는데 나에게는 바로 그 체험방식 자체가 쾌락점인 것 같다

고생-보상의 구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떳떳한 쾌락

즉 ‘좆같지만 익숙한 주입식 암기식 고문+불반도인들이 환장하는 고진감래 시스템’에 본능처럼 중독된 것이다
존나 막 관계도 거미줄같이 그려놓고 호 직책 본명 칼이름 연표 지명 정리해서 달달 외우다보면 어느새 그 세계관에 쑥 들어가서 등장인물 손짓발짓에 그냥 막 울고 웃고 뒹구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말이야

최고지 너무 좋지
내 노예근성이 이 맛좋은 사약을 마다할 리가

근데 따지고 보면 대개의 오락물이 이런 구조로 짜여져있긴 하다
문제는 늘 밸런스
당연하게도 인물 설정 복잡한 작품이 전부 이런 수고를 감수할만큼의 쾌락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온갖 설정들이 정교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맞물리게끔 설계할 줄 아는 묵선생 같은 재주꾼이나 가능한 대업
어쨌건 고생. 최고의 쾌락증폭기이자 집착촉진제.
진입장벽을 주먹으로 깨부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피가 집착을 살찌우는 법.
고생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나저나 고생 하니까 말인데
묵소설 주인공들 왜이렇게 개고생을 하냐
좀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참혹한 고초를 겪는다
천관사복 100장 읽다가 오 약간 놀라서 뒷걸음질쳤어
그 왜 탐미적인 것에 죽고 못사는 장르소설에선 주인공은 곧죽어도 아름답게 존엄사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지 않나
근데 묵월드 주인공들한텐 막 피떡되고 갈갈이 찢기는(비유 아님) 일이 거의 필수이벤트여
사람을 완전 뼈도 못추리게 다져놔요
이게 바로 중식도의 힘인가?
하긴 몸뚱이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도 크게 보면 이쪽 장르의 미학적 문법에 부합하긴 하겠다
어설프게 엄한 곳 썰려죽고 썩어가느니
하지만 그러한 위협을 적게는 13년 많게는 800년간 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래야만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하...

동양이다! 존나 동양! 이루 말할 수 없이 동양이다!

오래오래 정성을 다해 숙성한 음식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문화권!

효모!
발효과학!
피딴 낫또 묵은지를 먹는 동북아 계집들의 SM플레이다!

이렇게 책읽고 주접떨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왜 이토록 BL에 흥분하는가에 대한 자괴감 섞인 자아성찰을 도저히 안할 수가 없는데, BL물 수용자층의 심리분석은 이미 나올 만큼 나와서 굳이 여기다 쓸 필요 없을 듯.
그래놓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별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길.
안 해도 되는 짓에 집착한다는 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명백한 경고신호죠
정신을 좀 차리시길 바랍니다.

 

 

728x90

'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1231  (0) 2022.12.31
좋나일기_221125  (0) 2022.11.25
좋나일기_221115  (0) 2022.11.15
좋나일기_221025  (0) 2022.10.25
좋나일기_221020  (1) 2022.10.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