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07 부모님 집에 갔다. 2시간 걷고 짬뽕을 먹었다. 평범. 해당 지역구 밖으로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야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맛이었다. / 거실 소파에 늘어져있는데 구석에서 '꾸와웅' 소리가 났다. 소파가 삐걱대는 소리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작은 짐승의 울음 같았다. 소리가 나는 거실 구석의 가구 뒤쪽을 들여다보니 검은 털뭉치가 나를 올려다봤다. 아기고양이였다. 아빠는 다섯 마리의 길고양이를 돌보는데(어미1 새끼4) 한 3일 전부터 새끼 한마리가 보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애가 집에 들어와있었던 것이다. 사흘간 아무것도 못 먹고. 힘없이 울던 놈은 사람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후다닥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 쪽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구석으로 도망쳤다. 굶어죽을까봐 츄르 섞은 사료를 구석에 떨어뜨려줬다. 오독오독 먹는 소리가 나서 안심했다. 밥을 먹이고 소화시킬 시간을 좀 주고 부엌을 뒤집어엎어 놈을 끄집어냈다. 장갑 낀 두 손으로 몸통을 잡고 마당으로 나갔다. 애는 너무 놀라 발버둥조차 못 치고 모든 발가락을 쭉 펴고 울어댔다. 마당에서 놀던 어미와 형제들도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어있었다. 사흘간 사라졌다 사람 냄새 잔뜩 묻히고 나타난 새끼를 어미가 잘 거둘까 혹 내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곧 다섯이서 잘 어울려다녔다.
241008 수영장 - 간만에 즐거운 수영. 식사량이 늘어서인지 수영이 잘됐다. 수영장 으르신들에게 순박하고 참하게 생겼다고 칭찬받을 때마다 착잡한 기분으로 참하게 고개를 숙인다. / 수영장 터줏대감 중 한 분인 한식대첩 이모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손맛의 왕. 반찬 하나하나가 너무 맛있어서 배터지게 먹었다. 식사 후 커피타임. 피맺힌 사연 없는 분 하나 없다. 나도 모르게 인어공주 다리를 하고 참하게 앉아있게 됨. / 흑백요리사 최종화 시청. 만감이 교차함. 한국이란 무엇인가.
241009 아침에 호박을 따고 고양이를 구경하고 동네 꽃축제에 갔다. 국화, 마편초, 과꽃(아스타?), 좁은잎백일홍이 예뻤다. 인파가 엄청났다. 꽃밭마다 제발 들어가지 말라고 절절한 호소문을 써놨는데 기어이 들어가서 사진찍는 이들이 종종 보였다. 꽃의 모객효과에 새삼 감탄했고 사람들 못생겼다 / 백담사에 갔다. 주차장에서 인당 2500원짜리 버스를 타고 산속으로 7키로를 들어가야 절이 나왔다. 이렇게 깊은 곳에 있는 줄 몰랐다.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계곡길이 절경이었다. 괜히 유명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쭉 가다 보면 깊은 산속답지 않게 시야가 탁 트인 평평한 부지가 나오면서 절이 보인다. 규모는 비교적 아담한 느낌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위풍당당한 매점 두 개와 그 앞 벤치에 다닥다닥 앉아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방문객들 상당수가 마치 군것질이 절에 온 유일한 목적인양 거기서 파는 빵이며 아이스크림을 마구 먹어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질 수 없어서 연팥빵을 사먹었다 / 귀가. 중병의 전조증상이 내가 지닌 것과 겹칠 때의 불길함.
241010 속초에서 고생스럽게 은행업무를 수행하고 생선을 충동구매했다. 수산시장의 가격이 훌륭했다. 큰 삼치 5마리 만원 대구 7마리 만원! /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브이로그를 만들어봤다. 영상 퀄리티가 문화센터에서 포토샵 하루 배운 어르신 카톡짤 같다 / 부모님과 흑백요리사 재주행 / 엄마가 연팥빵을 좋아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려 했으나 절에서만 판다고. 도도한 판매방침. 더 끌리는데?! / 건강검진결과 나올 때가 됐는데 왜 잠잠하지. 혹시 중병환자는 늦게 나오나 / 삼치구이와 대구탕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식욕이 그렇게 좋으면 안 죽는다고 부모님이 말했다.
241011 또 수영. 쉬지 않고 전력으로 자유형 하는 건 역시 어렵군. / 해물칼국수를 먹었다. 면발 씹는 맛이 훌륭하고 국물이 아주 개운했다. 티비에선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뉴스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 검진 결과가 나왔다. 걱정했던 만큼 나쁘진 않았지만 충분히 우려스러운 성적표. 몸의 무료 구독 기간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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