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or bad_
몇 주째 고구마를 매일 양껏 먹는데도 전혀 안 질린다(음식에는 '물린다'가 맞는 표현이라지만 싫다...'바라요'만큼 거슬린다). 고구마 굽는 냄새가 델리만쥬보다 훨씬 좋다. 살이 엄청 쪘다. 몸에서 뼈가 드러났던 곳이 다 살로 덮였다. 체중은 무서워서 못 재겠다. 여기까지 쓰고 두 개를 더 먹었다.

토끼간을 먹었다. 몸집에 비해 간덩이가 꽤 큰 편이다 싶었던 것을 빼면 인상적인 점은 없었다. 돼지간과 비슷했다. 값은 세 배나 비싸면서. 전래동화의 과장광고 PPL에 낚인 전형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용왕 개새끼! 경험상 포유류의 간맛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사람의 간맛도 소 돼지 토끼와 궤를 같이 하리라 짐작한다.  

좋은 글을 읽을 때면 이 글은 몇 시간만에 나온 것이며 수정은 몇 번 했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나는 한큐에 글을 다 써본 기억이 없다. 머릿속에 두서없이 솟았다 꺼지는 문장 토막들을 힘들게 캐내서 흙 털고 썩은 부분 도려내고 맞춤법과 육하원칙과 문장간의 인과관계를 사후적으로 아주아주 힘겹게 맞춰가며 글을 쓴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기에, 내 글을 읽으며 산만하고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내 무능은 나를 새롭게 좌절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쓰고 그리고자 하는 의지는 제법 싱싱하다. 희한하다. 나 원래 의지박약인데. 그렇게 내 작업물이 수치스러워서 치를 떨면서도 어째서 뭔가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에 없이 꽉 붙들게 된 걸까? 고구마 폭식과 꾸준한 스쿼트 덕분인가? 희망의 원천이란 결국 허벅지 근육인가? 이렇듯 꾸준히 샘솟는 희망과는 별개로 전문가에게 정확한 자세교정을 받아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몸이 가장 낮아질 때 왼다리 뒷근육이 시리게 당기는 느낌이 있다.

올해가 지나면 기나긴 실업상태에 돌입할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얼어붙는다. 식구들이 더 늦기 전에 너도 얼른 시류에 편승하라며, [오징어게임] 아류작으로 [꼴뚜기게임] 같은 거 그려보라며, 오리지날의 백분의 일만 팔려도 그게 어디냐며, 오징어를 꼴뚜기로 패러디한 자신들의 센스에 크게 만족한 듯 낄낄 웃었다. 맙소사. 이미 누군가 어느 구석에서 써먹었을 발상이라 백퍼센트 확신하며 검색해보니, 역시나 컬투쇼에 꼴뚜기게임이라는 코너가. 아아 컬투쇼. 과연 한반도 메이저 정서의 교과서. 오늘도 큰 깨달음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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