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크고 작은 사건사고-그에 따른 생각과 감정들이 머릿속에 시시각각 두서없이 쌓인다. 그 혼돈의 머리통을 목 위에 대충 얹어놓고 허둥지둥 살아가는 게 보통사람이다. 기억과 상념의 쓰레기더미를 집요하게 뒤져서 쓸만한 걸 골라낸 뒤 누가 봐도 몰입이 되게 서사를 부여하고 재치있고 독창적 표현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도 모자라서 폐부를 콱 찌르는 통찰력까지 곁들여 내놓는 인간은 백프로 미친년놈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짓을 할 수가 없다.

근데 무궁화호 맨앞쪽 창측 자리 개좋네 거의 공공도서관 디지털열람실급이다 정차할 때마다 승하차객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정신없이 문 여닫고 찬바람 막 들어오고 그러긴 하지만 콘센트 꽂고 와이파이 쓸 수 있는 게 어디여 으허허

읽고 싶었지만 불쾌해질 게 뻔해서 미루고 미뤘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예상했던 재미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불쾌함 때문에 잠깐 즐겁고 종일 괴로웠다. 불쾌함을 시간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다. 가령 행인의 경미한 무례함은 10분, 지인의 반복되는 무례함은 3시간, 잘나가는 남을 봤을 때는 18시간, 욕먹은 건 36시간, 일터에서 짤린 건 72시간, 질병 및 집안의 우환은 96시간 이상, 이런 식으로. 그 책의 불쾌감은 18시간짜리였다. 징징대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몸에 좋고 입에 쓴 약 같은 불쾌감이다. 때 맞춰서 적당히 잘 삼키고 사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목에 걸리겠지만.

여성문화회관에 볼일이 있어 들어가려는데 문이 안 열렸다. 럭비선수처럼 어깨로 문을 밀고 있는데 문 안쪽에 서있던 할아버지들이 양팔을 막 허우적거리면서 옆을 가리킨다. 알고 보니 븅딱같이 폐문을 밀고 있었다. 머쓱하게 옆쪽으로 가서 출입문을 미는데 또 안 열린다. 다시 허우적대는 할아버지들. 손을 앞으로 쭉-뻗어서-몸쪽으로-당기라고! 허허. 당겨야 되는 문을 밀고 있었다. 무사히 들어간 뒤 열심히 몸으로 말해주신 할아버지들께 꾸벅 인사했다. 무심한 듯 고개를 슬쩍 까딱하며 인사를 받는 그들에게서 담백한 위엄을 느꼈다. 헌데 기분탓일까. 여성관련 공공기관 건물에 할아버지들이 눌러앉는 경우가 꽤 있는 듯하다. 저번에도 어느 동네 카페에서 창밖을 보는데, 맞은편의 여성무슨센터 쉼터에 순 할아버지들만 드러누워있어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 현상에서 어떤 의미있는 원인을 감히 찾아내도 될까? 임산부석에 보란듯이 앉은 영감? 퇴직 후 마누라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늙은 남자? - 뭐 그런 행태들과 막 성급하고 경솔하게 연결지어도 되는 걸까? 그것은 엊그제 나를 도와준 바디랭귀지 할아버지들에 대한 결례가 아닐까? 가만 보면 나는 늘 습관화된 자기검열과 지구력 부족으로 인해 이쯤에서 생각을 차단해버리는 것 같은데, 아닌가?

배에 난 점을 무심코 긁었는데 점이 떨어졌다!? 뭐지?! 내가 1년이 넘도록 딱지를 점으로서 존중해줬단 말인가??? 너무 공허하다.

너저분한 꼴을 못 보는 엄마가 내 머리를 단발로 오려냈다. 약간 오징어지느러미 모양으로 짤렸는데 어차피 삭발할 거라 아무려면 어떠나 싶었다. 근데 계획대로 안 될 것 같다. 연말에 약속도 없으니 이참에 여쟈로 태어나 삭발 한번쯤은 해야 한다는 지론이나 실천하자 했는데,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올해까진 절대로 민머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정이 있었다. 1월에 밀까 했더니만 그것도 뭐 이래저래 곤란하다. 나는 내가 히키코모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 사회적 동물이었어. 실망스러우면서도 내심 희미한 안도감이 드는데…이렇게 핑계가 많아서야 평생 삭발 한 번 못해보고 죽겠다. 그냥 1월 1일에 냅다 깎어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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