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블로거 앨리스님의 반려견 까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으로밖에 만난 적 없지만

얘는 어쩜 이렇게 눈빛이 맑고 선량할까,

감탄하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까미의 안식과 가족분들의 평온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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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 인물들이 독을 뿜는 장면은 생동감이 넘치는데 행복한 상황만 되면 분위기가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게 매회 기이했다. 가족구성원 전원이 식탁에 둘러앉아 낯뜨거운 말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뒤 떼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유일하게 허용된 행복인 세계. 특히 엄마의 애정공세를(아유 우리 아들, 인제 다 컸네~?)를 아들이 넉살좋게 받아치는 순간을(우훗, 저도 이제 어엿한 남자라구요~) 행복 중에서도 극상의 것으로 치는 듯한데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아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아들들은 끈적한 모정을 난감해하고 부담스러워하고 심지어 혐오했다. 이수임네가 하도 그런 쪽의 징그러운 대사를 자주 배정받길래 처음에 난 그 가족이 무슨 입발린 소리만 해대는 참교육 광인집단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제작진이 집중적으로 조롱하고 싶어하는 부류가 그쪽인가보다 싶어 팝콘을 튀겼는데 웬걸 그들의 존재가 드라마의 진심이었다. 기대했던 냉소와 조롱엔 별 뜻이 없는, 선악과 미추에 대한 확신을 지닌 사교육포도청드라마였다. 생각해보면 곽미향이라는 이름을 촌스럽다고 몰아붙일 때 이상함을 눈치챘어야 했다. 요컨대 신비로운 뱀껍질로 포장된 선물을 기대에 차서 신나게 뜯었는데 양반김세트가 튀어나온 판. 근데 뭐 김도 어떻게 보면 뱀껍질같고...한국인은 밥심이니까...밥상의 고요한 지배자 양반김...덕분에 밥 배불리 잘 싸먹었다. 배우들이 참 아름다웠다.




[골목식당] [슈퍼인턴] 자영업과 조직생활이라는 두 가지 색 지옥을 괴롭고도 흥미롭게 구경중이다. 재미의 2할은 유능한 자에 대한 동경심, 8할은 한 인간의 능력과 태도를 높은 곳에 드러누워 요리조리 평가하는 (가짜)전능감에서 나오는 듯하다. 과연 내가 저기 뛰어들면 중간이나 갈까? 비호감 민폐빌런으로 몰리기 딱 좋지 않나? 진지하게 자문하면 절로 묵념하게 되면서. 난관에 봉착한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 드러내는 용단을 내렸다는 것부터가 이미 다들 나와는 차원이 다른 위인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최근 방송을 탄 먹자골목에 다녀왔다. 추운 날이었는데, 화제가 된 식당은 웬만큼 기다려선 실내에 발 한짝 못 들일 정도로 줄이 길었다. 찬바람이 골목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대기자들은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고 주방에선 주인이 넋나간 표정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옆엔 텅빈 매장의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손님없는 식당 주인. 역시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사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아이돌 뮤직비디오] 행자랑 술마시며 아이돌 뮤비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특히 남돌 뮤비가 알콜과 잘 맞는다. 세상 다 제 것인양 허세떨든 자기연민에 허우적대든 깜찍한 척을 하든 술먹고 보면 어떤 컨셉도 다 웃음폭탄 돼버린다. 여돌 뮤비를 보며 소리내어 웃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매혹되거나 애잔해진다. 매체 속 여성미는 대개 웃음과의 궁합이 좋지 않다. 이 제약을 어떻게 하면 잘... 




[스파이더맨:뉴유니버스] 너무 좋아 미쳐버림 [미래의 미라이] 전혀 4살 남아답지 않은 주인공 목소리 때문에 끝끝내 몰입 실패 [드래곤길들이기3] 그렇게 정든 시리즈도 아니건만 이 엄청난 상실감 뭐지 [레고무비2] 영화가 전체적으로 뭔가 좀 긴장해서 재미없는 농담 막 빨리 하는 사람 같긴 했는데 중반부터 서사에 완전히 설득당해 엔딩크레딧까지 울면서 봤다. 레고무비시리즈 볼 때마다 음악에 감탄한다. 장난감 세계에 딱 어울리는 과자같은 사운드와 귀엽게 까불대는 가사들. 후속편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아 맞다 [주먹왕랄프2]도 엄청 재밌었다. 좋은 애니메이션 많이 봐서 신나는 와중에, 서사의 완급조절을 제일 매끄럽게 잘하는 건 역시 디즈니라고 느꼈다. 근데 또 정수리에 벼락맞은 듯 획기적인 쾌감은 타사 애니에서 받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쪽이 됐든 압도적인 협업의 마술 앞에 말문이 막히는 감각 너무 좋다. 




[알리타:배틀엔젤] 단행본 nn회독하고 온 연습장 참고서에 갈리 대갈치기하던 총몽광인이었으니 실사판에 만족을 못할 게 뻔했지만 알리타가 눈밑에 개피를 바르는 순간 정신이 날아가고 어떤 불평도 하기 싫어졌다. 실은 원작과 OVA와 영화의 차이에 대해 사자후를 토하다가 같이 본 행자의 당황스런 눈빛에 아차 싶어 닥쳤지만. 앞자리 아저씨도 초딩아들 붙잡고 원작이 어떻고저떻고 하던데 애 눈이 죽어있더만. 내가 다 애한테 미안했다. 암튼 간만에 이것까지 찾아봤네.





당시엔 이거 보고 질질 짰는데

지금은 술 한방울 안 먹고 개쳐웃는중

와 진짜 이 영상에 이 노래 붙일 생각 누가 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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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초품아 마래푸 고래힐 마용성 노도강이 뭐의 줄임말인지 알아들어봤자 뭐하나.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 멍청해지는 느낌이고 내 정신머리로는 절대로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확신만 강해진다. 누군가 인생은 자기를 믿고 나아가는 거라 하던데 맨정신에 그게 가능한가. 진짜 부럽다. 내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믿어서는 안 될 인간은 나 자신이다. 확고한 자기불신 하나라도 건져서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너무 속단하는 건가? 비관의 탈을 쓴 고질적 게으름이 또 또 나를 과장되게 부정적인 결론에 주저앉히려드는 것 같다. 내 안에 잠재할지도 모를 천재적인 투자재능을 발굴하기 귀찮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 나이 먹도록 발굴되지 않은 재능이면 없다고 봐도 되지 않나? 내가 괜히 게으른 게 아니다. 이 또한 수십년간 축적된 빅데이터의 결과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올해로 구십먹은 투자왕 워렌버핏도 아직 배울게 많다고 그러는 판에 나이 운운하며 포기하는 것도 좀 저거하지 않나. 여기까지 쓰고 또 지뢰찾기했다. 지뢰 한번 찾을 때마다 시신경이 썩는 것 같다. 투자천재는 시발 얼어죽을 적어도 워렌버핏은 내 나이에 지뢰찾기로 시간낭비하며 자학하진 않았겠지. 잠재된 재능이고 나발이고 그냥 지금 하는 짓이 곧 나 자신이다. 나는 지뢰찾기 폐인이여.



_혹시나 해서 '워렌버핏 지뢰찾기'로 검색해봤다. 역시나 아무것도 안 나오고 무슨 명언 퍼레이드만 쏟아졌다(아 이 할배 명언 진짜 많이 했다). 심지어 구글에서 'Warren Buffett minesweeper'로도 찾아봤는데 건질 게 없었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였다. Bill Gates was so addicted to Minesweeper, he used to sneak into a colleague's office after work to play 빌게이츠가 지뢰찾기 중독자였다는 2015년 기사. 세계적 떼부자와 같은 게임중독자라는 억지동질감을 쥐어짜내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_지하철 옆자리 노인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체취며 몸동작이며 간헐적 소음이며 모든 분야의 암묵적 에티켓을 쪼끔쪼끔 아주 소극적으로 위반하고 있었다. 거슬렸지만 어렵게 잡은 구석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긴 애매했다. 한 십여분쯤 지났을까 노인이 푸르르르 한숨을 쉬었고, 그 서슬에 큰 침방울이 내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신발끝에 떨어졌다. 바로 튕겨져일어났다. 노인은 내가 떠난 자리에 스윽 엉덩이를 밀고 들어갔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앞에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노인이 있었다(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팩 돌리고 토를 했다. 속력을 전혀 줄이지 않고 걸어가며 토했다. 사실 구토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토사물치고는 묽고 소량인데 침이라 하기엔 또 양이 많았다. 액체의 성질이 뭐든간에 문제는 그게 뒤따르던 날 덮치게 생겼다는 거. 생선처럼 몸을 휘어 간신히 봉변을 피했다. 집에 잠깐 들렀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 다시 열렸다. 이웃노인이었다. 낭패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바에는 생수통을 지더라도 계단을 택하는 편이다. 하지만 애매한 면식관계의 웃어른과 함께 타버린 지금 휙 내려버리긴 곤란하지 않나. 생수통보다도 무거운 유교의 압박. 하는 수 없이 목례하고 앞을 보는데 노인이 들고 있던 전단지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아고고고 죽겠다 하며 그 위에 주저앉았다. 놀라서 어디 편찮으시냐고 묻자 다리가 아파서 서있질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 식겁해서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하자 아니 사실이 그런데 뭐 얼른 죽어야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을 때까지 늙으면 죽어야지,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시들어빠진 두 문장만 공허하게 오갔다. 날아오는 분비물을 피할 민첩성과 계단을 오르내릴 힘이 사라지기 전에 사이보그기술이 상용화되기를 간절히 빈다.



_그 어떤 SNS도 안하고 고민하던 유튜브도 안하고 한물갔다 말하기도 뭣한 블로그에 돌아와 요즘 트렌드치곤 긴 잡담을 쓰고 연필로 그림그리고 종이책을 읽고 게임마저 윈도우에 내장된 지뢰찾기를 하면서 IT·과학계의 최신뉴스를 열심히 찾아보는 삶. 뭘 좀 알고 도태되면 덜 슬플까. 추가적인 신규진입이 잘 발생하지 않는 오래된 산업(예를 들어 시멘트, 전통공예 등)의 수익률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이 상황에 맞는 얘긴 아닌 것 같다. 내가 주워들은 얘기란 대개 이런 식으로 어딘가 미묘하게 부적절한 시공간을 방황하다 사라진다.



_올봄에도 [내 나이가 어때서] 순회공연이 또 열릴까 모르겠다. 작년 재작년 봄에 사람들이 집앞에서 하루 온종일 저 노랠 불러제끼는 통에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특히 그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에서 딱!이 너무 싫다) 지금은 그 주책없는 에너지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또 하루종일 그걸 듣고 앉아있으면 생각이 바뀔 게 뻔하지만, 지금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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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수요예측에 실패해서 아무도 안 다니는 길을 다람쥐도로라고 한다. 사람은 없고 다람쥐만 다닌다는 의미. /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위험요소를 절대로 혼자 안고 가지 않는다. 그것을 수출한다. 독극물을 달콤하게 포장하는 데 대단히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다. / 월급은 어느 회사나 딱 그만두지 않을 정도로만 준다. /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다.


언젠가 한번쯤 써먹으려고 적어둔 말들인데 막상 입밖에 내려니 훈장님 재떨이냄새나고 낯뜨거워 못하겠다. 월급얘기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그거야 정보값 10원푼도 안 되는 술자리 추임새 같은 거고. 써먹든 안 써먹든 이런 쪽지식들 모아보는 데 재미가 붙었다. 다람쥐처럼 긁어모으자. 다람쥐가 월동준비로 도토리를 곳곳에 열심히 묻어놓지만 그 중 상당수의 위치를 까먹고 지나가는데 그 망각이 도토리나무의 번성에 큰 역할을 한다던가. 아무렇게나 주워들은 얘기들 무의식에 대충 던져놓고 잊어버리면 3월쯤 두개골에 싹이 틀지 모르겠다. 




아인슈타인이 천국에 가자 신은 그에게 환생하는 사람들의 직업을 부여하는 일을 시켰다. 아인슈타인은 첫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IQ가 몇입니까?" 그가 "200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연구하라고 권했다. 두 번째 사람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150이라는 대답을 듣자 아인슈타인은 세계경제를 예측하라고 했다. 마지막 사람은 IQ 60이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그럼 당신은 환율을 예측하는 일을 하시오." 

스탠딩코미디 방청객처럼 와하하깔깔깔 웃어줘야 될 것 같은 미국조크. 똑똑하나 멍청하나 환율을 정확히 예측하려 해봤자 의미없다는 얘기다. 덕분에 무지하게 안 읽히던 환율책을 와하하깔깔깔 웃으며 날려버렸다. 



"내가 지금 35세라면 당장 한국에서 농지를 사겠다" "앞으로 주식중개인은 택시를 몰고 현명한 농부는 람보르기니를 타게 될 것이다" "농업에 뛰어들라"  - 미국 월가의 전설, 투자 대가 짐 로저스


귀농한 이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까. '한국은 지형 특성상 농지가 작은 규모로 흩어져있어 미국 호주 캐나다 같은 대규모경작의 이점을 누리기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울적한 상식을 단박에 뒤엎는 권유인데......곧이어 "일본은 농민평균연령이 66세에 이르고 영국에서는 농업 분야의 자살률이 가장 높지만 한편으론 농민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존나 잔인한 분석을 덧붙여놓은 걸 보면 이건 무슨 저승길 말동무로 한국사람을 모집하려는 건가 싶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전설의 예언이 실현되어 귀농인들이 단체로 람보르기니 타고 다니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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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fufufu01@naver.com

twitter.com/pyedogteeth
instagram.com/pyedogteeth


[만화]

먹는존재
https://www.lezhin.com/ko/comic/ee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series?productNo=5305349

족하
https://www.comico.kr/comic/1372?languageCode=ko

홍녀
https://www.comico.kr/comic/1733?languageCode=ko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series?productNo=803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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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4일_지뢰찾기하다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서 냅다 뛰쳐나왔다. 우울하게 방황하다 습관처럼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가게들이 죄다 문닫은 골목은 회색으로 죽어있었다. 더 우울해졌다. 동네 재래시장에 갔다. 한적하고 규모도 작고 이렇다할 명물이나 매스컴 탄 맛집도 없고 상인들마저 약간 내성적인 시장인데(그래서 좋아하지만) 설은 설이었다. 온 시장통이 사람들로 새까맣게 북적였다. 야 다행히 여기도 명절 특수를 누리는구나. 잘되는 동네 자영업을 보면 기분이 좋다. 반찬집과 고깃집과 떡집이 특히 붐볐다. 갓 뽑은 가래떡을 뚝뚝 떼어 시식으로 나눠주는 손길과 정신없이 전 부치는 뒤집개에서 엄청난 흥이 느껴졌다. 그런데 (당연히도) 모든 점포가 잘되는 건 아니었다. 빵집과 속옷가게는 그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질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속옷이야 두고두고 팔면 된다쳐도 빵집은 같은 음식장사하는 입장에서 속 좀 타겠다 싶었다. 그런데 맘모스와 상투과자와 소시지피자빵과 잘게 썬 양배추와 엉성한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갖춘 전형적인 시장빵집에 인파가 몰리는 걸 본 기억이 있던가. 발렌타인 크리스마스같은 시즌에 붐벼터지는 건 대개 시장 바깥의 '베이커리'다. 그래도 시장빵집 특유의 예스러운 빵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은 분명 존재하니 내 걱정이 무색하게 사시사철 큰 기복없이 갈지도 모르겠다. 시장 하늘을 덮은 캐노피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설맞이 가래떡썰기대회 제기차기대회' 진지하게 나가볼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버렸다. 어릴 땐 저딴 걸 대체 누가 나가냐며 코웃음을 쳤는데 시발 그게 미래의 나였어. 신청일자가 지났음에 슬퍼하고 안도했다.





5일_한번 명절 시장맛을 보니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또 나왔다. 마침 시사인의 신년기획 [대림동에서 보낸 서른 번의 밤]http://daerim.sisain.co.kr/도 읽었겠다 대림중앙시장에 가기로 했다. 12번 출구 밖으로 나가자마자 검은 인파가 먹물처럼 흘렀다. 검은색 패딩은 동북아시아인의 겨울철 유니폼 같다. 나도 먹물 한방울. 냉큼 섞여들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추석의 중앙시장을 봤다. 골목 가득 넘쳐나는 월병 구경하는 게 너무너무 즐거웠다. 설날에는 어떤 풍경일지 궁금했다. 둘러보니 의외로 월병 같은 시그니처 품목이 눈에 뜨이지는 않았다. 스팸이나 과일 같은 한국적 선물세트와 중국술 세트, 그리고 보리수나무 열매로 만든 열쇠고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보리수열매에 관심이 갔다. 먹어만 봤지 장신구로 만든 건 처음 봐서 좀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돈없는 처지에 판매자에게 희망을 주기 두려워 멀찍이서 기웃거리기만 했다. 흥미를 보이며 다가와 열매를 만지작대는 객에게 싹싹하게 효험을 설명하던 판매자는 객이 떠나자 다시 열매들을 가지런히 정돈했다. 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쓰다듬던 그 손이 마음에 남았다. 아무래도 사올 걸 그랬다. 가족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여유로운 표정의 부모와 볼 통통한 애들이 손에손에 호떡이며 꼬치를 들고 웃으며 가고 있었다. 날 따뜻한 연휴라는 게 이렇게나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중국말이 많이 들렸지만 생각보다 한국말의 비중이 높다고 느꼈다. "한국인은 1등시민, 조선족은 2등시민, 한족은 3등시민" "한국에서 '언어(한국어)'는 일종의 권력이고 자산이 된다"는 기사내용이 생각났다. 안쪽길로 더 들어갔다. 고수 당콩 오리알 영채 두리안 그리고 조그만 파란무와 그을렸는지 절였는지 삭혔는지 모를 새까만 사과같이 익숙하고도 생소한 식재료들이 줄지어 있었다. 꽈배기 호빵 만두를 비롯해 닭 메추리통구이 돼지의 온갖 부위로 만든 요리들도 존재감 여전했다. 이번엔 도가니로 추정되는 부위를 하얗게 쪄서 파는 곳이 많았다. 거깄는 내장이란 내장들 종류별로 싹 다 사오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










6일_연휴 막날의 시장이라면 명절 당일 뼛속까지 상혼을 태우고 황량하기 그지없을 터였다. 하지만 재래시장 폐인 돼버린 나는 어디라도 가야했다. 청량리도매시장에 붙은 통닭골목은 왠지 연휴에도 성업중일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내림




어디야




어디냐고



결국 못찾았다. 통닭은 뼈한조각 못 보고 황량함만 스케일 크게 느끼다 돌아가게 생겼다. 그런데 어쩌다 접어든 약초골목에서 의외의 활기를 접했다.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상인과 객들로 제법 북적였다. 덩달아 들떴다가......곧 슬퍼졌다. 객의 태반이 고령자들. 즉 이 골목의 활기는 노인의 육체적 고통이 연중무휴임을 의미한다. 행자는 청량리를 싫어했다. 노인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생의 에너지에 질식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 청량리가 싫지 않다 말하며 이 일대에 예정된 개발호재 주워들은 얘기 몇 가질 덧붙였다. 행자는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네.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까. 조만간 통닭골목 다시 찾으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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