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통이 날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렇게까지 티 낼 필요는 없었는데 참지를 못해서 기어이 몇 사람의 기분을 잡쳐놨다. 내가 뱉은 말에 상대의 낯빛이 변하는 순간이 수시로 떠올라 괴롭고 우울하다. 우울감 심할 때 남의 잘된 작업물을 보면 진짜로 죽도록 우울해지니까 되도록 피하는데 어제오늘은 뭔 날인지 고립감과 위기감까지 질식해 죽을 지경으로 심해져서 최근 입소문난 어떤 작품을 냅다 몰아봤고, 우려대로 기분이 완전 쑥대밭됐다. 나는 쓰레기 좆방맹이만도 못한 무능력자고 내가 손대는 건 죄다 망할 것이다. 이런 유치한 파국적 사고의 종착지는 단 하나. 지뢰찾기다. 손대는 족족 폭탄이 터져도 몇번이고 새출발이 가능한 이 미친 희망의 게임에서 나는 이제 벗어나기를 포기했다. 총 게임횟수 만 판이 목전이다. 저 숫자는 자기혐오의 무게다(단위는 근이 좋겠다). 나 자신이 너무 지겹고, 이렇게 살면 저 폭망의 자기예언이 실현될 게 뻔해 너무 무섭고 떨리는데, 한편으로는 게임성에 감탄하는 마음도 있다. 정말 잘 만든 게임 아닌가? 간결하며 철학적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숫자힌트를 잘 취합하면 네모판에 흩어진 99개의 지뢰 가운데 90개 이상을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 노력하면 대부분의 난관이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개 중 하나를 그냥 냅다 찍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 내 힘으론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50%의 확률로 생사가 갈리는 순간. 직전까지 암만 잘했어도 운 없으면 끝장이라는 거. 요컨대 지뢰찾기는 능력으로 해나갈 수 있는 영역과 도박의 쪼는 맛이 더없이 절묘하게 결합된 인생의 축소판이다! 쓰레기가 되어가는 길에 이거라도 깨달아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나저나 게임중독과 알콜중독 중에 그나마 전자가 건강에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게임도 보통일이 아니다. 허리랑 눈깔이 세트로 빠지게 생겼다. 차라리 술이 낫겠다 싶어 다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뢰찾기하는 주정뱅이가 됐다. 아무데나 막 눌러서 지뢰가 펑펑 터지고 승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신이 돌이킬 수 없이 썩어버리기 전에 지뢰찾기의 원산지나 한번 밟아보고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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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장터국수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영업하는 곳이 남아있더라. 너무 반가웠다. 초등학생 때 다니던 치과 건물 1층에 장터국수가 있었다. 치료 끝나고 거기서 가끔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장터국수 간판만 봐도 뜨겁고 찝찔한 국물과 치과 냄새와 드릴 썩션 소리에 오감을 두들겨맞는 것 같았다. 그 느낌 여전했다. 신기하고 이가 시렸다.



_말로만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던 감자탕집에 드디어 가봤다. 생각보다 한적했다. 팔천원짜리 뼈해장국을 먹었는데 고기양은 적었지만 국물 고기 배추김치 무김치 모두 내가 생각하는 국밥집의 이데아에 가까운 맛이었다. 접객도 적절했다. 공기밥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운을 떼자마자 신속히 처리해줬다. 날씨마저 좋았다. 활짝 열어둔 매장 입구로 훈풍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봄바람 맞으며 돼지등뼈를 젓가락으로 힘껏 비틀어 짜개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꿈결같아 슬퍼질 지경이었다. 반쯤 먹었을 때 등산객 몇 팀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매장이 꽉 찼는데 나처럼 단품 뚝배기 먹는 사람 아무도 없고 죄다 대중소가 붙은 메뉴들 그것도 웬만하면 다 대짜에 떡수제비감자사리 추가는 기본이고 소주도 쉴새없이 추가했다. 다 먹고 계산하고 신발 찾아신는 내내 여기저기서 등뼈추가를 외쳤다. 뼈추가는 만구천원이다. 감자탕집의 등산객 객단가란 정말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_대형고깃집을 볼 때면 저게 과연 유지가 잘 될까 괜히 걱정하게 된다. 내가 고기굽는 식당에 잘 가지 않으니 왠지 남들도 다 안 간다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은데 너무 자기중심적 착각이지 싶다가도 실제로 그 왜 건물 외벽에 장독대 막 박혀있고 소돼지가 그려진 몇층짜리 고깃집들이 많이 사라진 걸 보면 마냥 근거없는 착각은 아닌 듯하고. 그러다 우연히 외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끼리 하는 얘길 주워들었다. 사람들이 이제 예전만큼 고기 구워먹으러 다니는 걸 선호하지 않는단다. 케첩의 원조 크래프트하인즈가 건강식 선호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몰락하여 이 기업의 대주주인 워렌버핏이 3조를 손해봤다는 뉴스가 돈다. 그런 시대인가보다. 



_밥도 잘 안해먹는 주제에 뭔 배짱으로 잡곡을 사재기했는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묵히느니 마른팬에 볶아서 과자 대신 씹어먹기로 했다. 두어 번 씻고 30분쯤 불린 다음 전체적으로 황갈색이 돌 때까지 약불에 볶았다. 타지 않게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어줘야 하는 게 약간 성가셨지만 의외로 즐거움이 컸다. 곡물이 열에 은근히 익을 때 나는 특유의 향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좋았고 중간중간 팝콘처럼 하얗게 튀겨지는 애들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다. 이 행위를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다 볶은 곡물을 밀폐용기에 넣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왔다가 초미세먼지 농도가 600 넘게 치솟은 공기청정기를 보고 기절초풍했다. 요리는 진정 생명을 살리고 갉아먹는 행위임을 실감했다. 볶은 곡물은 정말 맛있었다.



_쇼핑몰에서 서리태 사려다 너무 비싸서 중국산을 검색했는데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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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콘텐츠는 미국 것으로 100% 대체가능하지만(언어가 같고 문화가 비슷하므로) 한국콘텐츠는 대체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어느 대목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창작물 A와 B가 동일한 언어로 되어있다는 게 상호대체가능의 근거가 될 수 있나. 두 나라의 문화를 비슷하다고 퉁쳐도 되나. 양놈들 다 똑같이 생겼다는 소리랑 매한가지 경솔함은 아닌가. 세계적으로 못 알아듣는 사람이 많은 언어권의 문화콘텐츠일수록 희소성의 법칙에 의한 경쟁력을 얻기 쉬운가. 전혀 아니잖아. 아닌가? 혹시 내가 한국어나 한국적 정서를 해외진출의 핸디캡으로 치부하는 관점에 너무 단단히 사로잡힌 건가?? 그렇다면 한국어콘텐츠 저작권의 부질없음을 비장하게 한탄했던 과거의 나를 매우 쳐야겠다. 탓해야 하는 건 시장의 협소함이 아닌 내 무능력이니(근데 내 능력 탓하기는 이번 건 아니더라도 맨날 하는 짓이라 의미없다). K팝의 흥에 취해 아무렇게나 떠들어댔을지 모를 소리를 뭘 또 이렇게 과대평가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사실이라면 다행이지만 한국어와 한국 특유의 문화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분석에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약간의 촉매제 역할이면 모를까. 어떤 창작물을 볼 때 생소한 언어나 문화에 잠깐 매료될 수는 있어도 결국 보편적 재미가 없으면 소용없다고 보는데, 사실 내가 어떻게 보든말든 그거야말로 뭔 소용인가!



GDP대비 R&D 투자 세계 1위 이스라엘 2위 한국_한국경제 생각보다 대단하다


하도 경제를 놓고 괜찮네 다 죽었네 어쩌네 말들이 많아 명확한 판단이 어려운데 나름 이것저것 열심히 주워들어본 바 한국경제의 위상이 무시못할 수준이 되었다는 게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외부요인에 취약한 게 문제지만). 그게 절망이자 평안이다. 여기 아닌 어딘가 좋은 곳이 있을 확률이 매우 낮아진 건 절망이나 삶의 터전을 수고롭게 옮길 필요 또한 줄어버려 마음 편하다. 말 통하는 지옥에서 어떻게든 연명할 팔자인 듯싶다. 



토요타_연료전지 관련 특허 수백개 모두 공개_대체 왜?_수소차 시장 자체를 키우는 것이 급선무_선점자로서의 독식을 꾀할 상황이 아님_더 많은 플레이어와 더 많은 투자금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것이 중요 / 일본은 한국보다 수소 이용에 적극적이고 개발역사도 더 길다 / 가정용 연료전지_가정에 보일러 대신 연료전지스택 설치_가정으로 공급되는 도시가스 속의 수소를 연료전지 안에서 분리하고 이 수소로 발전_이때 발생하는 열로 난방함_에너지효율 거의 90% / 10년 안에 원유 사용량이 0가 될 것이다


자동차나 연료 쪽 뉴스를 보면 거의 아이폰 출시 직전 뺨치는 지각변동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늘 하는 소리지만 집구석에 드러누운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업계 쪽 사람들의 위기감과 스트레스는 어떨지 짐작도 안 된다. 그래도 변화의 최전선에서 양질의 정보를 최대한 흡수->그것을 바탕으로 최적의 판단을 내린 뒤->신속한 실행->성공/실패분석으로 판단의 정확성을 강화하는 경험을 착착 쌓아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정체불명의 한정된 정보를 뗏목삼아 불안하게 이생각 저생각을 표류하는 게 습관이 돼서 큰일이다.



미래는 모른다. 섣불리 시장을 예측하지 말고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라. 그 기업의 주식을 최소 3년은 들고 갈 생각을 하고 꼭지인지 바닥인지 따지지 말라. 하지만 사람은 예측하고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습성에 굴복하기 쉬움을 명심하라.


이런 종류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통찰은 사실상 통찰을 해낸 본인한테나 의미가 크지 듣는 사람 뇌에서는 금방 휘발된다. 역시 주관의 개입이 최소화된 소위 raw data를 직접 분석하여 나름의 이론을 뽑아내고 그걸 실전에 적용하여 깨졌다 흥하는 학습과정이 모든 일의 핵심이고 통찰은 그 부산물일 따름이다 그럴 능력도 각오도 없이 남의 부산물만 주워먹는 자세로는 어차피 망한다는 통찰을 은근슬쩍 싸고 있네 아이고 씨벌 진짜 늙긴 늙었구나. 근데 경제뉴스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라도 통계분석능력은 필요할 것 같다. 아 확률통계 진짜 싫었는데...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착한 거짓말, 나쁜 거짓말, 그리고 통계.


때마침 헤밍웨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됐고 으허허 뭐하러 공부하냐 인간의 주관이 배제된 자료란 다 허상이고 거짓말인데! 이러면서 또 자연스럽게 공부의지를 놔버렸다. 죽은 자의 통찰을 핑계로 오늘도 변함없이 나자빠져 제자리를 맴돕니다. 근데 raw data로 검색하니 2017년에 발매된 전략게임이 나오던데 그거 재밌을까. 요즘 진짜 천재는 게임 잘 만드는 사람들 같고 콘솔 사고 싶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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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수론은 내가 수학과 다닐 때도

학교에서 강의도 안 했어

커리큘럼에도 없었어

그건 그냥 거의 장난식으로 치부하는 거지

해석학 이런 게 많았지


B        대학에선 해석학이 제일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문과쪽에서조차도


A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장난만은 아닌 것 같애


B        뭔가 쓰임새가 있겠죠


A        어 컴퓨터 이런 거에 활용되지

천재들이 뭔가를 해놓으면

3백년쯤 지나서 그게 막 쓰여


C        그 천재들 괜히 3백년을 앞서가지고 힘들었겠네

돈도 못 벌고


B        생각해보면 역사에서 3백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닌데

인간한테는 너무...


C        올리브 맛있다 올리브 좀 먹어


B        음~


A        수론은 인제 수학과 다니면서도

학교에서 강의를 안 해주니까

그냥 각자 수론책을 사가지고 공부를 했지

혹시 내가 천재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으로

근데 아니었어

아무도 천재가 아니야! (웃음)


B        그래도 막 공부를 해서 자기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도 멋있네요

한계까지 가본 거잖아요

아 씨 나도 공부 좀 해야 되는데 게을러갖고


A        아냐 하지 마 공부할 필요없어 그냥 놀아


C        그건 아니지 공부를 해야지 뇌가 안 늙어

근데 너 요새 똥은 잘 누니


B        아 네 뭐


A        대화를 할라그러면 갑자기 껴들어서

올리브 얘기하고 똥 얘기하고

집중을 할 수가 없어


C        이런 것도 다 대화야

야채주스 갈은 거 꼭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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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발이식기술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터키는 세계 최강이다.


털심는 것마저 형제일 필요가 있나. 하여튼 터키도 사람 외모 가지고 되게 들볶는 분위긴가 보다. / 그런데 터키랑 한국이 진짜 형제의 나라라고 할만한 사이인가? 살면서 터키와의 형제애를 경험한 적은 한번도 없고 아이스크림 장난만 당했다. 검색해보니 터키 쪽도 딱히 한국을 형제라 여기는 분위기는 아닌 모양이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별 관심 없는 듯. 진짜 형제국은 아제르바이잔이라 한다. / 참고로 터키 아이스크림 장난이 싫으면 사전에 그냥 아이스크림만 달라고 말하면 된단다. 아니면 돈 낼 때 줄락말락 장난쳐서 복수를 하란다. 씨벌 피곤해...



요즘 일본애들 노래며 춤이며 연기스타일이 뭔가 촌스럽고 유치한 게 꼭 우리나라 팔구십년대 수준 같더라 / 일본 음원과 영화산업 등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나 내수시장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데다 부동산사업으로 수익창출중이기 때문에 위기의식이 크지 않다고 / 한국인이 아무래도 동양인들 중에선 피부가 흰 편이기도 하고 암튼 아시아권에서 잘 먹히는 얼굴이다


J팝 영미팝 일색이었던 내 mp3 플레이어가 K팝으로 도배된 걸 보면 진짜 격세지감이긴 하다. 사대주의에 찌든 내 귀는 변함없는데 갑자기 국내외 유능한 아티스트들이 자본따라 한국에 흘러들어 한국말로 된 내 취향의 노래를 쏟아내는 시대가 와버렸다. 얼떨떨하게 주워듣는 중이다. / 역시 부동산 불패인가? 아니 진정한 예술은 역시 굶어야 나오는 건가? 둘 중에 더 쓸만한 교훈이 뭐야? / 외국 특히 아시아 쪽 얘기할 때 일본애들 중국애들 동남아애들 운운하는 건 익숙하게 거북한데 한국인의 인기요인 중 하나가 상대적으로 흰 피부라는 분석은 신선하게 암담하다. 하지만 당장 나만 해도 흰 피부에 대한 열등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빈부격차를 일컫는 말_카푸치노_최하층의 커피=다수의 빈곤한 흑인, 그 위의 우유거품=소수의 부유한 백인, 거품 위 코코아가루=극소수의 흑인 부유층


이런 비유에 흥미를 느끼는 한 완벽한 평등은 요원하려나.



부동산의 조경을 예쁘게 잘 해놓는 건 매우 효율적인 투자다. 조경에 들인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뽑아낼 수 있다.


돈이 되는 꾸밈노동...



글이 글쓴 사람보다 훌륭한 건 너무 당연한 거야. 안 그러면 누가 글 따위를 써.


맞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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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샐러드팩 10개를 선택하고 주문버튼을 누르려다 '이 상품을 본 고객이 많이 본 상품목록'에 스테이크가 껴있는 거 보고 웃었다.



_쭈꾸미볶음에도 부대찌개에도 심지어 동태탕에도 고르곤졸라 피자를 끼워준다. 치즈 쬐끔 붙은 허여멀건한 종잇장 같은 게 나오는 거 뻔히 알면서도 '서비스로 피자 한 판'이라는 파격엔 이상하게 매번 속고 싶어진다. 그 점이 이 마케팅의 포인트인 듯하다. 고르곤졸라 피자란 판매자 입장에서 얇은 도우에 변변한 토핑 하나 안 올리고도 피자라는 이름이 지닌 푸짐함의 아우라를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물건너온 5음절짜리 난해한 명칭과 확 친해졌다. 길고 생소한 외래어를 입에 올릴라치면 으레 피어나는 멋쩍고 주눅든 웃음이 고르곤졸라를 말할 땐 잘 안 보인다. 고유명사에 취약한 연령층조차 매끄럽게 발음한다. 이쯤되면 업신여기게 된다. 얼마전 처음 가본 피자집에서 메뉴판을 보는데 웬일로 고르곤졸라 피자가 최상단에 있었다. 형광색 BEST 마크까지 붙었다. 평소였으면 바로 택했을 조건이었으나 주저없이 제끼고 다른 걸 골랐다. 친숙함을 평가절하의 근거로 삼는 것은 온당한가.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 곧 식사에 집중했다. 특이했다. 이탈리안인데 사찰음식 같았다. 맛집될 의욕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맛.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업주의 모든 세속적 야망을 박박 긁어 만든 단 하나의 메뉴가 고르곤졸라 피자였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_고구마를 향한 사랑은 조금 식었고(너무 비싸다) 지금은 계란에 미쳤다. 그나저나 방송자막은 왜 그렇게 계란을 악착같이 달걀로 고쳐놓는 걸까. 순우리말 권장 차원에서 그러는 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데. 암튼 계란 30구짜리 세 판을 싸게 파는 마트가 있다기에 득달같이 달려가 샀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한 판일 땐 별 생각 없었는데 세 판을 묶어놓으니 무게가 만만찮았다. 또 알다시피 계란은 잘 깨지는데 무게가 늘면 그만큼 다루기 어려워지니 파손우려가 더 높아지고, 이런 물리적 심리적 부담감이 체감무게를 대여섯배 증폭시켰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금세 팔근육이 떨렸다. 집까지는 1Km도 넘게 남았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택시? 고작 몇 백원 아끼자고 멀리 떨어진 마트까지 걸어왔는데 미쳤다고 택시를 타? 그냥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렇게저렇게 자세를 바꿔가며 몇 발짝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재래시장에서 잔뜩 산 떨이재료를 미련하게 이고지고 걷다가 건널목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몰아쉬던 엄마 생각이 났다. 몸서리가 쳐졌다. 맞은편에서 할머니가 걸어왔다. 머리에 2리터짜리 올리브오일병을 얹은 채 기적처럼 곁을 스쳐 지나가는 할머니. 왜 저런 기예를 익혀야만 했는지 너무 이해됐다. 정수리에 수직으로 가해지는 압력이 팔의 통증보다는 견디기 쉬우니까. 나도 한 번 해보려다 바로 단념했다. 90알의 깨진 계란 위에 엎어져 통곡하는 내 미래가 선히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온갖 자세들을 처절하게 전전하며 계속 걸었다. 그러다 마침내.......최적에 가까운 자세를 찾았다. 지면과 평행한 계란판의 한쪽 변을 배꼽 아래쯤에 단단히 붙이고 쭉 뻗은 양팔로 그 맞은편 변을 잡는다. 그러니까 계란판(밑변)과 내 몸통(높이)과 팔(빗변)이 직각삼각형을 이루도록 하고, 계란판 잡은 손에서 몸통 방향으로 힘을 가하며 걷는 것이다. 어떤 과학원리가 숨어있는지는 몰라도 이 자세가 그나마 가장 편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_우울감을 잊기 위해 빵을 굽는다니 소름돋게 쪽팔리는 클리셰이긴 한데 그런 걸 또 굳이 유난스럽게 쪽팔려하는 꼴도 우스웠다. 나까짓게 뭔데 감히 클리셰같이 근사한 걸 거부하느냔 말이다. 그렇게 구워낸 통밀식빵은, 꼬인 심보가 섞인 탓인지 위는 타고 속은 덜 익고 모양은 뒤틀리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실체가 분명한 결과물을 맨손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확실한 위안이 됐다. 방금 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향과 온도와 무게를 지닌 덩어리. 그걸 한입에 먹어치움으로써 감쪽같이 존재감을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 또 괴상망측하게 멋진 지점이다. 먹고 사는 건 대체로 슬프고 피곤하고 끔찍하지만 가끔 단순명쾌한 쾌감을 준다. 그래도 못생긴 빵은 이제 좀 그만 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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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거 앨리스님의 반려견 까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으로밖에 만난 적 없지만

얘는 어쩜 이렇게 눈빛이 맑고 선량할까,

감탄하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까미의 안식과 가족분들의 평온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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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2019.03.29

_초품아 마래푸 고래힐 마용성 노도강이 뭐의 줄임말인지 알아들어봤자 뭐하나.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 멍청해지는 느낌이고 내 정신머리로는 절대로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확신만 강해진다. 누군가 인생은 자기를 믿고 나아가는 거라 하던데 맨정신에 그게 가능한가. 진짜 부럽다. 내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믿어서는 안 될 인간은 나 자신이다. 확고한 자기불신 하나라도 건져서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너무 속단하는 건가? 비관의 탈을 쓴 고질적 게으름이 또 또 나를 과장되게 부정적인 결론에 주저앉히려드는 것 같다. 내 안에 잠재할지도 모를 천재적인 투자재능을 발굴하기 귀찮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 나이 먹도록 발굴되지 않은 재능이면 없다고 봐도 되지 않나? 내가 괜히 게으른 게 아니다. 이 또한 수십년간 축적된 빅데이터의 결과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올해로 구십먹은 투자왕 워렌버핏도 아직 배울게 많다고 그러는 판에 나이 운운하며 포기하는 것도 좀 저거하지 않나. 여기까지 쓰고 또 지뢰찾기했다. 지뢰 한번 찾을 때마다 시신경이 썩는 것 같다. 투자천재는 시발 얼어죽을 적어도 워렌버핏은 내 나이에 지뢰찾기로 시간낭비하며 자학하진 않았겠지. 잠재된 재능이고 나발이고 그냥 지금 하는 짓이 곧 나 자신이다. 나는 지뢰찾기 폐인이여.



_혹시나 해서 '워렌버핏 지뢰찾기'로 검색해봤다. 역시나 아무것도 안 나오고 무슨 명언 퍼레이드만 쏟아졌다(아 이 할배 명언 진짜 많이 했다). 심지어 구글에서 'Warren Buffett minesweeper'로도 찾아봤는데 건질 게 없었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였다. Bill Gates was so addicted to Minesweeper, he used to sneak into a colleague's office after work to play 빌게이츠가 지뢰찾기 중독자였다는 2015년 기사. 세계적 떼부자와 같은 게임중독자라는 억지동질감을 쥐어짜내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_지하철 옆자리 노인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체취며 몸동작이며 간헐적 소음이며 모든 분야의 암묵적 에티켓을 쪼끔쪼끔 아주 소극적으로 위반하고 있었다. 거슬렸지만 어렵게 잡은 구석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긴 애매했다. 한 십여분쯤 지났을까 노인이 푸르르르 한숨을 쉬었고, 그 서슬에 큰 침방울이 내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신발끝에 떨어졌다. 바로 튕겨져일어났다. 노인은 내가 떠난 자리에 스윽 엉덩이를 밀고 들어갔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앞에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노인이 있었다(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팩 돌리고 토를 했다. 속력을 전혀 줄이지 않고 걸어가며 토했다. 사실 구토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토사물치고는 묽고 소량인데 침이라 하기엔 또 양이 많았다. 액체의 성질이 뭐든간에 문제는 그게 뒤따르던 날 덮치게 생겼다는 거. 생선처럼 몸을 휘어 간신히 봉변을 피했다. 집에 잠깐 들렀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 다시 열렸다. 이웃노인이었다. 낭패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바에는 생수통을 지더라도 계단을 택하는 편이다. 하지만 애매한 면식관계의 웃어른과 함께 타버린 지금 휙 내려버리긴 곤란하지 않나. 생수통보다도 무거운 유교의 압박. 하는 수 없이 목례하고 앞을 보는데 노인이 들고 있던 전단지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아고고고 죽겠다 하며 그 위에 주저앉았다. 놀라서 어디 편찮으시냐고 묻자 다리가 아파서 서있질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 식겁해서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하자 아니 사실이 그런데 뭐 얼른 죽어야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을 때까지 늙으면 죽어야지,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시들어빠진 두 문장만 공허하게 오갔다. 날아오는 분비물을 피할 민첩성과 계단을 오르내릴 힘이 사라지기 전에 사이보그기술이 상용화되기를 간절히 빈다.



_그 어떤 SNS도 안하고 고민하던 유튜브도 안하고 한물갔다 말하기도 뭣한 블로그에 돌아와 요즘 트렌드치곤 긴 잡담을 쓰고 연필로 그림그리고 종이책을 읽고 게임마저 윈도우에 내장된 지뢰찾기를 하면서 IT·과학계의 최신뉴스를 열심히 찾아보는 삶. 뭘 좀 알고 도태되면 덜 슬플까. 추가적인 신규진입이 잘 발생하지 않는 오래된 산업(예를 들어 시멘트, 전통공예 등)의 수익률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이 상황에 맞는 얘긴 아닌 것 같다. 내가 주워들은 얘기란 대개 이런 식으로 어딘가 미묘하게 부적절한 시공간을 방황하다 사라진다.



_올봄에도 [내 나이가 어때서] 순회공연이 또 열릴까 모르겠다. 작년 재작년 봄에 사람들이 집앞에서 하루 온종일 저 노랠 불러제끼는 통에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특히 그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에서 딱!이 너무 싫다) 지금은 그 주책없는 에너지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또 하루종일 그걸 듣고 앉아있으면 생각이 바뀔 게 뻔하지만, 지금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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