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왜 이렇게 손톱이 빨리 자라나 했더니 시간이 빨리 가는 거였다.

_좀처럼 선택받지 못하는 이모티콘의 기분에 대해 생각한다.

_독촉하는 쪽보다 독촉받는 쪽이 그나마 적성에 맞는다.
독촉을 하려면 더 근면하고 강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_몇몇 작가들의 일상 뉴스레터(무료)를 신청했는데
단 한 명도 예외없이, 한두 달 전후로 업데이트가 불규칙해지다 감감무소식인 걸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자기와의 약속, 돈 안 되는 마감은 나이롱채찍.
너무 잘 안다.

_그럼에도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건 남은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쓰기.
이걸 재개할 날만 기다리며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억해주시는 M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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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하위 90%의 평균 소득은 25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고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더 짧아졌습니다. 선진국치고는 놀라운 일이죠. 1년 전만 해도 이는 백인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였으나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습니다. 미국인의 1%는 대단히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만 나머지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죠. 

- Joseph Stigl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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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끝에 '자'자를 붙여 사람구실하게 만드는 짓을 좀 즐겨한다. 출근자, 퇴근자, 식사자, 생일자. 아 특히 생일자. 생일자 너무 좋다. 어감이 뭔가 되게 바보같이 비장해. 그럼 장애자는. 우리 땐 애자애자거리면서 낄낄대는 싹수 노란 애들이 천지로 깔렸었는데 장애'인'이 언중에 완전히 뿌리내린 지금은 분위기 어떤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공적언어로도 욕설로도 기능하지 못하는 불편한 유령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길거리에서 거리낌없이 장애자 운운하는 건 십중팔구 늙은 차별주의자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환자는. 운전자는. 정신병자는. '자'보단 '인'이 더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기는 한데 밥먹듯 쓰는 이 단어들을 노동인 환인 운전인 정신병인으로 고치자는 주장은 본 기억이 없다. 놈 자者자에 숨겨진 멸시와 배척의 발톱은 부정적인 명사와 들러붙었을 때 팍 튀어나오는 것 같다, 고 말하려니 환과 정신병이 애매하다. 심신이 아픈 건 인생 부정적인 이벤트의 대표격인데 환자랑 정신병자가 딱히 멸칭은 아니지 않냐, 고 하기엔 또 좀 그렇다. 환자는 아슬아슬하나마 중립의 위치에 놓였다쳐도 정신병자는 준욕설이다. (야이 환자야! vs 야이 정신병자야! - 그래서 정신병자 대신 공적영역에 나서는 말은 대개 '정신질환/심신미약자') 병. 환. 장애.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점은 다 같은데 뒤에 붙는 자 자의 느낌은 왜 이리 다른가. 그러면 이 의문의 발단이 된, 노숙자는 어떤가. 노숙인이라는 수정어가 나온 마당에 노숙자를 쓰자니 못할 짓 같은데 아직 일상어로 느껴지지 않는 노숙인을 쓰는 건 뭔가 근질근질하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그냥 숙과 자가 부딪혀 생긴 된발음 '숙짜'를 포기하기 아까워 이러는 것 뿐인가 싶기도 하고. 골치가 아프다. 여행기 속 시간의 나는 내 경로를 막아선 노숙자들에 겁을 먹고 걸음을 멈춰버렸고 현재의 나는 가뜩이나 없는 시간에 노숙자를 쓸지 노숙인을 쓸지(+이 외에도 수많은 고민들로) 망설이느라 글 진행을 못하고 있다. 답답해 죽겠다. 빨리 다 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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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미국에서 숨쉬는 것 밥숟갈 한입 한걸음한걸음이 재밌어 죽겠는데 출근자들로 적당히 붐비는 평일 통근전철의 창가자릴 차지하고 앉으니 눈오는날 마당에 풀어놓은 개처럼 온정신이 막 팔딱팔딱 뛰고 난리났다. 흥분감을 감출 수도 감출 맘도 없었다. 차창밖 풍경 뭐 하나라도 놓칠세라 상체를 창가에 바싹 붙이고 입을 반쯤 벌린 채 흘러가는 집 상가 자동차 나무 구름들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맑은 하늘 쨍한 햇볕 널찍하게 터를 잡은 넙대대한 건물들과 건물간의 공백을 채워놓는 식물들의 풍성한 무질서함. 봐도봐도 지겹지 않았다. 다음 역에 근접할 때마다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번 역은 써니베일. 마운틴 뷰. 샌 안토니오. 한국처럼 미리 녹음된 음성을 재생하는 게 아니라 차장이 매번 직접 읊어주는 의외로 아날로그적인 방식인데, 그 느낌이 너무도 친숙해서 안 웃을 수 없었다. 대중교통 운전자 특유의 권태롭고 시무룩한 음색은 만국공통인가보다.


_역을 몇 개나 지나쳤나. 낮았던 건물들이 한층 두층 높아지고 반짝반짝해지는 것 같더니만 곧 귀에 익은 역명이 들린다. 다음 역은 팔로 알토. Palo Alto. 아하 팔로알토가 뭔가 했더니 동네 이름이구나. 영구가 말했다. 시간나면 언제 한번 가볼래? 스탠포드 대학이 여기거든. 페이스북하고 아마존 본사도 있어. 학군 일자리 역세권 3콤보면 집값 존나 비싸겠네. 어 장난 아니지. 완전 부자동네야. 단위면적당 고급차가 제일 많다던가 아마. 어째 동네 때깔이 좋아보이더라니. 여기서 탑승하는 인간들도 괜히 대단해보이려고 한다. 돈냄새에 쉽게 맛이 가버리는 나 자신을 형식적으로 꾸짖으며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풍경을 바라봤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점점 가까워지는 만큼 앞으로 나올 동네들은 갈수록 비싸질 일밖에 없겠구나. 꼭 그렇진 않아. 영구가 말했다. 싸졌다 비싸졌다 하는데...우와 저기 그래피티가 있네. 그러게. 어떻게 저기까지 기어들어가서 그림 그릴 생각을 했냐. 사람들이 농반진반으로 하는 말인데 그래피티가 많은 동네일수록 집값이 싸다더라고. 아하. 내가 아는 농반진반의 대부분은 진심이 반을 넘었다. 암튼 뭔말인진 알겠는데 이 앎이란 사실상 몇 가지 뻔한 편견들에 기반한 것이다. 머릿속 편견덩어리를 게으르게 방치한 나 자신을 형식적으로 꾸짖으며 창밖에 스쳐지나가는 그래피티들을 관찰했다. 대체로 신통찮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피티의 빈도와 집값이 반비례관계라면 그래피티의 '작품성'과 집값의 관계는 어떨까. 잘 그린 담벼락 낙서는 부동산의 호재일까 악재일까. 영구는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다만 후드티를 입은 젊은 남자들이 거리에 별 목적없이 삼삼오오 모여있으면 위험신호일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뭔말인지 확 알겠는 동시에 이 인식이 특정계층에 대한 탄압의 근거로 쓰여왔다는 사실 또한 어느 때보다 무겁게 의식됐다. 두 개의 앎 사이에서 와리가리하는 나 자신을 선뜻 꾸짖지 못하는 동안, 주택가 공장지대 상점가 그리고 내가 내렸던 공항과 들판과 넓은 호수가 차창밖을 꿈같이 지나갔다. 이윽고 으리으리한 고층건물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종착지인 샌프란시스코역에 도착했다.


_서울역에 내린 기분과 비슷했다. 바로 화장실을 찾았다. 사람이 많아 줄을 잠깐 섰다 들어갔다. 여기 화장실도 하단이 휑하니 뚫려있다. 뭐 차차 적응되겠지, 하고 일을 보려는데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이 숨막히는 고요함. 뭐지? 모든 칸이 찼는데 왜 아무도 안 싸? 혹시 샌프란 시내에서 오줌소리내면 미개인 되는 건가? 물을 내려서 소리를 감추기라도 해야 하나? 와씨 이거 싸 말어!?! 고민하는데 곧 졸졸졸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그렇게 미친 풍습이 있는 동네는 아니구나. 안심하고 목적을 달성했다. 지나치게 눈치보는 나 자신을 무엇보다 호되게 꾸짖어야 하나 싶다.


_역에서 나와 영구의 일터를 향해 걸었다. 5시 좀 안 되어 퇴근하니 그때까지 시내에 있으면 연락해서 같이 돌아가잔다. 날도 흐리고 바닷가도 가까워 그런지 쌀쌀했지만 출근자들 특유의 날선 에너지에 둘러싸이기도 했거니와 시내 풍경에 넋이 나가 곧 추위를 잊었다. 이쪽은 애플의 단골 키노트 장소인 모스콘 컨벤션 센터! 저쪽은 어쌔씬 크리드로 유명한 유비소프트! 울엄마가 좋아하는 핀터레스트! 그리고 또 여긴 영구의 직장동료가 추천한 햄버거집! 바! 인도 멕시칸 스페인 요리집! 저긴 사랑해마지않는 홀푸드마켓! 세이프웨이! 현대미술관! 예술대학! 공원! 분수대! 선생님 따라 줄맞춰 걸어가는 어린이집 꼬맹이들! 이곳저곳 정신없이 둘러보며 신명나게 멘탈춤을 추다보니 어느새 마켓 스트리트. 영구와 헤어질 시간이었다. 가엾은 출근자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섰다. 벌써부터 불안감이 스멀스멀 심장을 감아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구글맵 보고 미리 찍어둔 공원에서 산책하고 도서관 미술관도 가고 상점도 들르고 트위터 본사 구경도 해야지. 큰길따라 죽 걸었다. 계속 걸어내려갔다. 그런데...어...기분탓인가? 어쩐지 조금씩, 조금씩, 통근자 혹은 관광객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 같다. 나한테 철저히 무관심한 대도시의 공기에 어떤 이질적인,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섞여들고 있었다. 아. 이 강렬한 악취. 노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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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자동차만이 미국생활의 유일한 교통수단일 리 없다. 매체에서 숱하게 봤지 않나. 지붕뚫고 들어와서 쌈박질하는 놈들땜에 차 안이 쑥대밭되거나 차체가 통으로 납치되거나 강바닥에 처박히거나 선로이탈해서 온동네가 뭉개지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배경->다 버스와 전철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미친 짓처럼 느껴지는데 그만큼 구해주러 달려오는 히어로도 많은 동네이니 뭐 괜찮지 않겠어. 무고한 엑스트라들의 개죽음을 최소화하려는 근래의 블록버스터 트렌드까지 고려하면 겁을 좀 덜 집어먹어도 괜찮지 않겠냐 말야. 알 게 뭐냐 전철이다. 전철을 찾아보자.

_구글맵으로 보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전철역이 있었다. 도보로 40분 거리. 샌프란시스코 업무상업 밀집지구로 향하는 칼트레인Caltrain 열차였다. 영구가 하는 말이 자기도 종종 칼트레인으로 출퇴근한다며, 말 나온 김에 내일 아침 같이 나가면 어떻겠냐 제안한다. 냉큼 그러자고 했다. 왜 이렇게 신나지. 도보-전철통근이라는 서울의 흔한 이동패턴을 여기서 재현한다는 생각만으로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

_더 흥분해도 될 뻔했다. 쨍한 하늘빛에 공기는 상쾌하고 찬란한 햇살 아래 집집마다 심어놓은 오렌지나무가 반짝반짝 빛나는...이런 말도 안 되게 이상적인 아침이라니. 그나저나 거듭 느끼지만 여기 진짜 오렌지나무를 많이들 심는다. 널린 게 오렌진데 마트에서 파는 오렌지값이 그렇게 엄청 싸지는 않은 것이 또 신기하다. 한국에선 감나무의 위상이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달린 열매하며 바닥에 퍽퍽 아무렇게나 떨어진 모습(오렌지와 달리 질퍽하게 뭉개진다는 게 아주 유감스런 차이지만) 결정적으로 정작 마트에서 사려면 그렇게까지 싸지는 않다는 것까지. 닮았다. 감. 영어로 persimmon. 아직 안 까먹었다고. 

_길따라 반듯하게 놓인 귀엽고 아담한 주택들. 차고도 있고 마당도 딸린 집에 아담하다는 표현이 적합한가 다소 의문이지만 광활한 부지에 수영장 큼직하게 파놓고 사는 내 편견 속 미국 대저택에 비하면 이곳 북캘리포니아지역 집들은 아담하다. 필요한 것만 알뜰하게 갖춘 캡슐같다. 공사중인 집을 지나치다 골조가 모조리 목조로 돼있는 걸 보고 놀랐다. 평생을 철근콘크리트상자에서 보낸 내 눈에 각목 같은 걸 짜맞춰서 집 기둥뿌리를 해올리는 건축기술은 마냥 신기하고 불안하게 비쳤다. 부실하지 않나? 화재에 취약하지 않나? 부실공사와 화재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겪어온 철콘근크리트국민 주제에 뭔 웃기지도 않는 기우질인가 싶었지만. 하지만 영구가 귀뜸해준 저 목조캡슐들의 평균시세에 이 모든 잡상은 날아가고 경악만이 남았다. 서울에서 꽤 괜찮은 위치의 신축아파트에 입주하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북캘리포니아의 미친 집값을 처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_역에 도착했다. 눈에 확 띄는 표지판도 없고 역사驛舍도 없고 역세권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상권도 없고 그냥 동네에 별 경계선 없이 푹 퍼져 드러누운 듯한 역 분위기가 재밌었다. 자동판매기에서 가고자하는 지역을 선택한 뒤 신용카드나 현금으로 값을 치르면 표가 나온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금은 과연 비쌌다. 열차는 예정된 시각에 거의 정확히 도착했다. 2층열차의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한국 출퇴근시간의 콩나물시루지옥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승객이 꽤 많았다. 태반이 젊은 IT업계 종사자로 보였다. 객실 내부는 매우 정숙했고, 잔잔한 키보드소리와 톤을 낮춘 업무통화만이 고요한 공기를 살살 흔들 뿐이었다. 내 옆에 한 인도인이 다가와 앉았다. 백에서 꺼낸 플레인요거트를 따고 뚜껑을 핥은 뒤 곧 노트북을 켜서 업무에 몰두하는 그. 흘끗 보니 핀터레스트 직원이었다. 크...멋지잖아......개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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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라이
자꾸 속터지는 소리만 하니깨 애비얘길 꺼내는거아녀 이새꺄


_어쨌건 시차적응은 된 것 같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다. 뭉개진 계란과 잎채소 견과류 과일을 먹고 헬스장에 갔다. 출근시간대에 운동하는 인간은 단지 전체를 통틀어 한두 명뿐임을 확인했다. 런닝머신과 싸이클론을 실컷 썼다. 자전거는 거들떠도 안 봤다.


_마트 한번 혼자 걸어갔다온 것도 꼴에 모험이었다고 배짱이 붙었나보다. 자꾸 나가고 싶다. 단, 반경 5Km 내에서 6시간쯤 유지될 딱 1인분의 배짱. 없어지기 전에 얼른 써야지. 구글맵으로 주변정보를 열심히 쑤셔봤다. 마트, 잡화점, 음식점, 옷가게, 술집, 편의점, 서점, 카페...가고 싶은 곳은 너무 많은데 지도만 봐서는 목표지점까지 걸어가는 길이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어쩌지. 모처럼 얻은 배짱이 벌써 쭈글탱거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지도를 늘였다폈다하며 미적거리는데, 손끝에 푸르고 가는 줄기가 닿았다. 개울이었다. 남쪽으로 흘러흘러 상점가, 초등학교, 공원, 도서관을 스쳐지나가곤 이내 사라지는 개울. 제일 좋아했던 동네 산책길이 생각났다. 잡목과 수풀 무성한 뚝방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보면 동산에 폭 파묻힌 도서관이 나오던. 갑자기 도진 향수병에 힘입어 빠르게 외출준비를 마쳤다. 가자 개울로. 나가기 직전에 한번 더 구글맵으로 경로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선 쓸 일이 없어 맨날 지울까말까 고민했던 구글맵을 여기선 하루종일 주무르고 있다. 괜한 그리움에 네이버 지도를 켜봤다. 화면 전체가 허연 공백. 텅 비었다. 고향땅의 앱에서 내 위치정보가 통째로 증발되다니. 묘하게 울적하네. 또다른 지도앱을 켜봤다. 그 앱에서의 내 현위치는 동호대교다. 뭐임마??


_편의점 세탁소 주류판매점 등이 나란히 붙은 아담한 상점가 몇 군데를 지났다. 눌린 햄버거같이 질펀한 모양새의 단층짜리 상가건물에 넉넉한 주차공간이 붙어있다. 간판들이 멋지다. 보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데, 막상 왜 멋지냐는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힐 듯했다. 예를 들어 홍콩과 일본 상점가 간판이라 하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매력포인트들이 있지 않나. 힘차게 용틀임하는 대형 폰트랄지 현란한 원색의 네온사인, 건물벽과 허공에 정신없이 난립한 무질서의 미학 등등. 반면 내가 매료된 미제간판들은 뭐랄까 싱겁다. 연양갱처럼 길죽한 직사각형에 온순한 색깔의 별 기교없는 폰트들이 헐겁지도 빽빽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여백을 남기고 새겨져있는 것들이다. 은근함. 정갈함. 소탈함. 군더더기 없음. 절박함 없음. 낡고 빛바랜 부자의 청자켓 같은. 어쩌면 난 있는 집 자식의 여유로움에 반했을 뿐인 걸지도 모르겠다.

단독주택이 가지런히 줄맞춰 늘어선 골목을 걸었다. 하늘 아래 유일한 이족보행자가 나밖에 없는 듯한 기분에 제법 익숙해졌다. 느긋하게 걸으며 집구경을 했다. 말로만 듣던 정원 딸린 미국집. 레몬과 오렌지나무를 참 많이들 심었다. 탐스러운 열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렸고 그 중 열몇 개쯤은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나무에 달린 건 말할 것도 없고 낙과들조차 상품성이 너무 좋아보였다. 저거 썩기 전에 주워먹어야 되지 않아? 듣자하니 안먹고 그냥 방치하는 집들이 많다고 한다. 세상에. 배부른 캘리포니아 놈들! 악착같은 우리 올드 코리안들이었어봐라 저 레몬 오렌지 싸그리 주워다가 배터지게 까먹고 얼굴에 팩 해붙이고 남는 건 효소 담갔지. 계속 걸었다. 온갖 꽃들로 정원을 화사하게 가꿔놓은 집이 있는가 하면 태양광 패널만한 선인장을 그득 심어놓은 집도 있고 농구대, 불상,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심지어 어떤 집은 큼직한 드래곤을 갖다놨다. 죽지못해 최소한의 관리만 겨우 하거나 아예 식물들 싹 밀어버리고 자갈을 깔아놓은 집도 물론 있었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재밌었지만 자신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이 외부로 노출돼있는 것이 집주인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원을 방치하면 벌금도 문댔지 아마. 진짜 짜증나겠다. 개성은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사치재다. 돌봐줄 땅 한 뙈기 없는 한국 아파트의 척박한 몰개성을 찬양한다!

마침내 고대하던 개울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물길 전체가 통제구역. 슬프고 궁금했다. 개울, 천, 호수, 강에 대한 한국의 기본적 인식은 ‘모두의 놀이터’이지 싶다. 아무나 쉽게 물에 접근 가능하다. 물이 사람을 모으고, 물길따라 행락지가 길게 생기고, 거기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 접근금지는 예외적이다. 이에 비해 미국, 적어도 캘리포니아는 통제가 기본이고 접근허용이 예외조치로 보인다. 어디서 비롯된 차이일까. 기후? 지형? 이것도 주마다 다르겠지. 엊그제 영구가 미국의 모든 주에서 한번씩 살아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어떤 마음인지 알겠다.


_도서관에 왔다. 오전 10시에 열고 저녁 6시에 닫는다. 현재시각 9시 53분. 아직 개관 전이고 일찌감치 도착한 10여명이 닫힌 문앞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 중 일고여덟명이 동양인임을 깨닫고 푹 뿜었다. 하여튼 저 개미같은 학구열을 어떻게 주체하질 못하는구나. 정각에 문이 열렸다. 우아하고도 포근한 곳이었다. 넓지만 책장과 독서공간이 적절히 배치돼 휑한 느낌 없고, 적지 않은 이용자가 수시로 오갔지만 어수선하지 않았다. 전자기기 하나씩 끼고 와서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 일원이라는 게 약간 흥분되고 좋았다. 도서관에 온 뒤로 혈중소외감농도가 확 낮아졌다. 이용자의 상당수가 동양인인 게 단순히 이 집단 특유의 높은 학구열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흥분감과는 별개로 작업은 힘들었다. 익숙지 않은 태블릿PC에 낯선 그래픽작업용 어플 몇 개 깔고 손에 덜 익은 펜슬 붙들고 장시간을 고생했다. 이 버전의 기기들로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하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렇게 쓰라고 만든 물건들이 절대 아닐 거라는 강력한 확신과, 더럽게 안 풀리는 수학 도형문제를 어떻게든 맞혀보려고 시험지 여백에다 도형을 한도끝도없이 그려나가는 노가다를 할 때와 비슷한 암담함을 안고 더듬더듬 일했다.

밥때가 훌쩍 지났다. 배가 고팠지만 나가자니 자리를 뺏길 것 같았다. 일을 마칠 때까지 붙어앉아있으려고 했으나 배에서 크고 해괴한 소리가 나서 소지품을 전부 싸안고 밖으로 나왔다. 1층 출입구 옆 벤치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요거트와 과일 두세 쪽을 후딱 먹고 들어갔다. 나온 김에 화장실도 들렀다. 틈만 나면 미국 공중화장실의 불결함에 치를 떨던 지인이 있어 살짝 겁먹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지금까진 그럭저럭 쾌적한 편이다. 지인은 어딜 다녀온 걸까. 하나 신기한 건 화장실 변기칸의 문과 칸막이 밑부분이 굉장히 크게 뚫려있다는 점. 한국은 휴지 하나 겨우 교환할 정도이거나 그나마도 완전히 막힌 경우가 많은데 여긴 거의 옆칸으로 기어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화장실에서 딴짓거리하는 인간들(ex. 마약) 여차하면 기어들어가서 끌어내려고 이렇게 만들었나. 아니면...시선만 슬쩍 내려도 안에 들어간 사람의 다리가 잘 보이니까 굳이 노크하거나 문을 당겨볼 필요가 없어 편하던데, 혹시 이걸 노린 건가.

다행히도 아까 작업했던 자리가 비어있었다. 도로 앉아 또 한참을 쩔쩔맸다. 그래도,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아주 조금, 개미만큼의, 진척이 있었다. 몇 개의 단축키를 알아냈고 미끌미끌 불쾌한 터치감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나아간다/발전한다’는 희망만한 양질의 에너지도 없다. 돈 빼고. 오전보다 한결 나아진 컨디션으로 작업했다. 그리하여 결국 폐관시간 전에 일을 끝마쳤다. 실로 간만에 느끼는 성취의 희열. 정말 기뻤다. 안 쓰던 도구로 달성한 성취라 더 기뻤다. 한국집에 있었음 맨날 하던대로 하고 남는 시간엔 또 맨날 하던 고민만 들입다 하다가 자빠져 잤겠지. 사람이 참 이게 편히 기대오던 관성이 무너지고 결핍이 오고 위기에 처해야 도전도 하고 극복도 하고 그러는구나. 앞으로는 새로운 환경에 자꾸 뛰어들어버릇해야지. 키오스크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히 볼케이노 치즈와퍼를 주문해먹는 할망구가 되어야지.


_퇴근한 영구에게 혼자 도서관 갔다온 얘기를 하니 엄청나게 날 대견해하면서 미국사람 다됐다고 한다. 미친 야 나 오늘 하루종일 입도 뻥끗 안 했는데 무슨 얼어죽을 미국인이야 했는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계속 자긴 진작에 내가 미국생활 잘할 줄 알았다며 당장 디즈니에 입사원서 내라고 막 그러고 있다. 디즈니는 씨발 개뿔 야이 미친놈아......혹시 이 정도로 허황된 낙관성이 있어야 미국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건가. 그럼 난 바로 탈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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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영구는 엔지니어다. 모든 엔지니어의 집에는 데스크탑이 있다. 따라서 평소 사용하던 스캐너와 와콤 펜마우스를 가져가서 영구의 데스크탑에 연결하면 한국과 동일한 작업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영구와 상의 한마디 않고 대충 짜버린 이 허술한 삼단논법. 초장부터 처참히 박살났다. 첫째. 영구는 데스크탑이 없었다. 회사에서 제공한 노트북으로 일했다. 둘째. 펜마우스를 안 가져왔다. 이로써 내 그림작업 청사진은 몽땅 수포로 돌아갔다. 방바닥에 등신같이 누워있는 무용지물 구형 스캐너를 노려봤다. 저 집채만한 고물을 10시간 넘게 싸짊어지고 여기까지 온 게 완벽한 삽질이 된 것도 모자라 또다시 10시간을 넘게 싸짊어지고 돌아가야 한다. 말도 못하게 화가 났다. 씨발 미친 머저리가 바보천치멍청이같이...뒤져라뒤져라뒤져...! 분노로 터질듯한 내 면상을 보고 영구가 말했다. 괜찮으면...BESTBUY 가볼래?


_보다 재밌고 보다 자유롭고 보다 최첨단에 보다 저렴한 하이마트. 그게 베스트바이BESTBUY의 첫인상이었다. 축구장의 두 배쯤 되는 면적에 온갖 기계들이 탐스럽게 들어차있었다. 헤드폰 낀 젊은 남자 그러니까 속칭 geek으로 분류될만한 자들의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으나 가족단위 방문객도 적지 않았다. 모두가 비치된 전자제품을 자유롭게 주무르며 놀고 있다. 영구도 벌써 눈깔이 생선떼 만난 상어처럼 돌변해서는 이 랩탑 저 랩탑을 광속으로 넘나들며 우와 해상도가! 터치가! 커서 반응속도가! 감탄하는 데 여념이 없다. 나도 미쳐가지고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북으로 지뢰찾기를 하려다가 뭐 도와줄 거 없냐는 직원의 말에 흠칫 놀라 도망쳤다.

기술혁신에 대단히 관심 많지만 정작 기기 구매는 쓰던 게 완전히 망가지고 나서야, 시중의 제품 중 최저가를, 꼭 필요한지 아닌지를 수천 번 자문한 뒤, 죽지못해 지갑을 여는 구두쇠의 습속에 단단히 묶여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근검절약이란 최고로 시대착오적인 소비행태가 아닌가. 이렇게 살다 현존 최고의 기술을 단 1초도 못 누리고 죽으면 실리콘밸리의 원혼 되지 않겠나. 집 떠난 지 열흘도 안 돼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고 지갑 든 손끝이 달아오르는 걸 보니 여긴 진짜 소비로 미쳐돌아가는 용광로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그 열기에 나는 지금 뇌가 녹은 거다. 저 아이맥에 저 가래떡같이 미끈하게 빠져나온 초소형 스캐너를 갖추면 쾌적한 책상에서 신나게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 하지 말쟈. 녹은 뇌가 만들어낸 착각. 허상. 다 허상이댜.

싱거운 싸움이었다. 돈생각을 하자마자 허상은 즉각 때려잡혔다. 데스크탑에 종이그림을 스캔해 올리고 일일이 잡티를 보정하는 원시적인 작업방식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돈이다. 추가비용 없이 집에 있는 도구만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굳이 비싼 돈주고 그 환경을 재현하는 건 청렴하게 살겠다며 삼백만원짜리 짚신을 맞춰신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다. 적절한 비유인가? 암튼 갑자기 정수리에 벼락맞듯 새삼 내 정체성을 자각했고 ‘​나는 구두쇠다’ 현재 손에 쥐고 있는 도구로 추가비용 없이 작업함으로써 구두쇠라이프의 일관성을 지켜내는 것이 유일한 지상과제로 급부상했다. 나에게는 영칠이가 넘겨준 태블릿PC와 펜슬이 있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영구에게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했다. 혹시 돈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실컷 쓰고 나서 귀국할 때 환불하면 된다고 영구가 말했다. 이들의 환불정책은 지극히 관대해서 60일 내라면 별다른 사유도 묻지 않고 막 물러준단다. 혀를 내둘렀다. 사람을 어떻게든 일단 쓰고 보게 만들려고 작정한 동네다. 혹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허상의 마지막 일격을 막아냈다!​



_켄지스시라는 곳에 갔다. 차창문 깨고 귀중품 훔쳐가는 도둑들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주차장 곳곳에 붙어있다. 소지품을 전부 배낭에 쓸어담아멨다. 홀에 들어서자마자 인조 벚꽃 장식이 눈에 띄었다. 이자카야 인테리어의 전형미가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었다. 그런데 영구가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는다. 알고 보니 음식을 갖다주는 미국 식당은 손님이 아무 자리나 가서 앉으면 안 되고 입구 쪽에서 담당직원의 안내를 기다려야 한다. 1분쯤 멀뚱히 서있다가 안내를 받고 착석했다. 롤 두 종류를 주문했다. 생각해보니까 미국에서 처음으로 크게 유행한 초밥의 형태가 캘리포니아 롤 아니었나. 캘리포니아. 이걸 또 본의아니게 원조동네에서 먹게 됐네. 허허 재밌구려~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커플, 가족 단위의 비동양인이 많았다. 대부분 젓가락질이 능숙했고(난 아직도 부끄러운 X자다!) 이 공간에서의 식사를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다. 와 일본외식문화 진짜 많이들 좋아하는구나. 근데 밥이 좀 늦네. 뭐라도 나와야 옆테이블 애의 뜨거운 시선을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을 텐데. 금발 벽안의 3세쯤 된 꼬마. 아까부터 나와 영구를 번갈아 빤히 쳐다본다. 애를 향해 힘껏 미소를 보내던 영구가 입꼬리에 웃음기를 그대로 매단 채 말했다. 설마 인종차별...그런 건 아니겠지. 사실 나도 그 의심부터 들었는데 뭐 저 나이 애들은 제 부모랑 자기 얼굴과 다르게 생긴 걸 보면 “신기”하지 않겠냐. 동양인을 신기해하는 그 감각 자체가 문제고 대수롭지 않게 봐넘길 건 아니라 보지만 안 넘기면 여기서 뭘 어쩔...이라고 말하는 와중에 밥이 나왔다. 맛있었다!


_식사 후 산타나 로Santana Row라는 곳에 갔다. 뭔지 모를 유럽풍 건축양식에 야자나무 폭포수 조경 노천카페 레스토랑 명품샵 특급호텔 등 아름답고 값비싼 것들이 밀집된 고급상점가였다. 패션피플의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확 높아졌다. 꽤 큰 돈을 지불한 자만을 이 아름다움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신호가 거리 전체에서 뿜어져나오는 듯했다. 그 신호에 압도당하는 것만으로도 내 분에 넘치도록 재밌었다. 어둡고 인적 드문 여느 주택가와 다르게, 이 밤거리는 아름답고 따뜻한 빛덩이가 사방에 떠다니고 무방비하게 깔깔 웃으며 먹고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서들 노느라 집 근처에 아무도 없었구먼. 어디든 그렇겠지만 미국은 돈이 도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온도차가 굉장히 극적으로 느껴진다고 생각하던 차, 한참 앞에서 걸어가던 남녀가 점점 느릿느릿 끈적끈적 흐느적흐느적 사랑의 2인3각을 벌이더니만 우리 코앞까지 거리가 좁혀졌다. 서로의 얼굴을 감싸쥐고 불같은 눈빛을 나누던 그들은 곧 키스를 했다. 잡아먹을 기세로 미친듯이. 영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보대회 출전한 듯 그들 곁을 빠르게 지나쳤다. 한블록쯤 지난 후 우리는 서로 엄지를 치켜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굿. 미 대중문화에서 숱하게 봐온 풍경을 드디어 실제로 봤다는 생각에 주책없이 흥이 났다. 드라마란 역시 술과 돈을 먹고 피어나는 꽃.



_집에 돌아와 할일을 팽개친 채 냉장고의 맥주를 전부 퍼마셨다.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큰일이다. 라거 에일 필스너 포터 스타우트 다 맛있어 미쳐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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