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샐러드팩 10개를 선택하고 주문버튼을 누르려다 '이 상품을 본 고객이 많이 본 상품목록'에 스테이크가 껴있는 거 보고 웃었다.



_쭈꾸미볶음에도 부대찌개에도 심지어 동태탕에도 고르곤졸라 피자를 끼워준다. 치즈 쬐끔 붙은 허여멀건한 종잇장 같은 게 나오는 거 뻔히 알면서도 '서비스로 피자 한 판'이라는 파격엔 이상하게 매번 속고 싶어진다. 그 점이 이 마케팅의 포인트인 듯하다. 고르곤졸라 피자란 판매자 입장에서 얇은 도우에 변변한 토핑 하나 안 올리고도 피자라는 이름이 지닌 푸짐함의 아우라를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물건너온 5음절짜리 난해한 명칭과 확 친해졌다. 길고 생소한 외래어를 입에 올릴라치면 으레 피어나는 멋쩍고 주눅든 웃음이 고르곤졸라를 말할 땐 잘 안 보인다. 고유명사에 취약한 연령층조차 매끄럽게 발음한다. 이쯤되면 업신여기게 된다. 얼마전 처음 가본 피자집에서 메뉴판을 보는데 웬일로 고르곤졸라 피자가 최상단에 있었다. 형광색 BEST 마크까지 붙었다. 평소였으면 바로 택했을 조건이었으나 주저없이 제끼고 다른 걸 골랐다. 친숙함을 평가절하의 근거로 삼는 것은 온당한가.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 곧 식사에 집중했다. 특이했다. 이탈리안인데 사찰음식 같았다. 맛집될 의욕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맛.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업주의 모든 세속적 야망을 박박 긁어 만든 단 하나의 메뉴가 고르곤졸라 피자였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_고구마를 향한 사랑은 조금 식었고(너무 비싸다) 지금은 계란에 미쳤다. 그나저나 방송자막은 왜 그렇게 계란을 악착같이 달걀로 고쳐놓는 걸까. 순우리말 권장 차원에서 그러는 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데. 암튼 계란 30구짜리 세 판을 싸게 파는 마트가 있다기에 득달같이 달려가 샀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한 판일 땐 별 생각 없었는데 세 판을 묶어놓으니 무게가 만만찮았다. 또 알다시피 계란은 잘 깨지는데 무게가 늘면 그만큼 다루기 어려워지니 파손우려가 더 높아지고, 이런 물리적 심리적 부담감이 체감무게를 대여섯배 증폭시켰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금세 팔근육이 떨렸다. 집까지는 1Km도 넘게 남았는데. 눈앞이 깜깜했다. 택시? 고작 몇 백원 아끼자고 멀리 떨어진 마트까지 걸어왔는데 미쳤다고 택시를 타? 그냥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렇게저렇게 자세를 바꿔가며 몇 발짝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재래시장에서 잔뜩 산 떨이재료를 미련하게 이고지고 걷다가 건널목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몰아쉬던 엄마 생각이 났다. 몸서리가 쳐졌다. 맞은편에서 할머니가 걸어왔다. 머리에 2리터짜리 올리브오일병을 얹은 채 기적처럼 곁을 스쳐 지나가는 할머니. 왜 저런 기예를 익혀야만 했는지 너무 이해됐다. 정수리에 수직으로 가해지는 압력이 팔의 통증보다는 견디기 쉬우니까. 나도 한 번 해보려다 바로 단념했다. 90알의 깨진 계란 위에 엎어져 통곡하는 내 미래가 선히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온갖 자세들을 처절하게 전전하며 계속 걸었다. 그러다 마침내.......최적에 가까운 자세를 찾았다. 지면과 평행한 계란판의 한쪽 변을 배꼽 아래쯤에 단단히 붙이고 쭉 뻗은 양팔로 그 맞은편 변을 잡는다. 그러니까 계란판(밑변)과 내 몸통(높이)과 팔(빗변)이 직각삼각형을 이루도록 하고, 계란판 잡은 손에서 몸통 방향으로 힘을 가하며 걷는 것이다. 어떤 과학원리가 숨어있는지는 몰라도 이 자세가 그나마 가장 편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_우울감을 잊기 위해 빵을 굽는다니 소름돋게 쪽팔리는 클리셰이긴 한데 그런 걸 또 굳이 유난스럽게 쪽팔려하는 꼴도 우스웠다. 나까짓게 뭔데 감히 클리셰같이 근사한 걸 거부하느냔 말이다. 그렇게 구워낸 통밀식빵은, 꼬인 심보가 섞인 탓인지 위는 타고 속은 덜 익고 모양은 뒤틀리고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실체가 분명한 결과물을 맨손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확실한 위안이 됐다. 방금 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향과 온도와 무게를 지닌 덩어리. 그걸 한입에 먹어치움으로써 감쪽같이 존재감을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 또 괴상망측하게 멋진 지점이다. 먹고 사는 건 대체로 슬프고 피곤하고 끔찍하지만 가끔 단순명쾌한 쾌감을 준다. 그래도 못생긴 빵은 이제 좀 그만 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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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초품아 마래푸 고래힐 마용성 노도강이 뭐의 줄임말인지 알아들어봤자 뭐하나.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 멍청해지는 느낌이고 내 정신머리로는 절대로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확신만 강해진다. 누군가 인생은 자기를 믿고 나아가는 거라 하던데 맨정신에 그게 가능한가. 진짜 부럽다. 내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믿어서는 안 될 인간은 나 자신이다. 확고한 자기불신 하나라도 건져서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너무 속단하는 건가? 비관의 탈을 쓴 고질적 게으름이 또 또 나를 과장되게 부정적인 결론에 주저앉히려드는 것 같다. 내 안에 잠재할지도 모를 천재적인 투자재능을 발굴하기 귀찮으니까.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 나이 먹도록 발굴되지 않은 재능이면 없다고 봐도 되지 않나? 내가 괜히 게으른 게 아니다. 이 또한 수십년간 축적된 빅데이터의 결과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올해로 구십먹은 투자왕 워렌버핏도 아직 배울게 많다고 그러는 판에 나이 운운하며 포기하는 것도 좀 저거하지 않나. 여기까지 쓰고 또 지뢰찾기했다. 지뢰 한번 찾을 때마다 시신경이 썩는 것 같다. 투자천재는 시발 얼어죽을 적어도 워렌버핏은 내 나이에 지뢰찾기로 시간낭비하며 자학하진 않았겠지. 잠재된 재능이고 나발이고 그냥 지금 하는 짓이 곧 나 자신이다. 나는 지뢰찾기 폐인이여.



_혹시나 해서 '워렌버핏 지뢰찾기'로 검색해봤다. 역시나 아무것도 안 나오고 무슨 명언 퍼레이드만 쏟아졌다(아 이 할배 명언 진짜 많이 했다). 심지어 구글에서 'Warren Buffett minesweeper'로도 찾아봤는데 건질 게 없었다. 그러다 눈이 번쩍 뜨였다. Bill Gates was so addicted to Minesweeper, he used to sneak into a colleague's office after work to play 빌게이츠가 지뢰찾기 중독자였다는 2015년 기사. 세계적 떼부자와 같은 게임중독자라는 억지동질감을 쥐어짜내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_지하철 옆자리 노인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체취며 몸동작이며 간헐적 소음이며 모든 분야의 암묵적 에티켓을 쪼끔쪼끔 아주 소극적으로 위반하고 있었다. 거슬렸지만 어렵게 잡은 구석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긴 애매했다. 한 십여분쯤 지났을까 노인이 푸르르르 한숨을 쉬었고, 그 서슬에 큰 침방울이 내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신발끝에 떨어졌다. 바로 튕겨져일어났다. 노인은 내가 떠난 자리에 스윽 엉덩이를 밀고 들어갔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앞에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노인이 있었다(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팩 돌리고 토를 했다. 속력을 전혀 줄이지 않고 걸어가며 토했다. 사실 구토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토사물치고는 묽고 소량인데 침이라 하기엔 또 양이 많았다. 액체의 성질이 뭐든간에 문제는 그게 뒤따르던 날 덮치게 생겼다는 거. 생선처럼 몸을 휘어 간신히 봉변을 피했다. 집에 잠깐 들렀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다 다시 열렸다. 이웃노인이었다. 낭패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바에는 생수통을 지더라도 계단을 택하는 편이다. 하지만 애매한 면식관계의 웃어른과 함께 타버린 지금 휙 내려버리긴 곤란하지 않나. 생수통보다도 무거운 유교의 압박. 하는 수 없이 목례하고 앞을 보는데 노인이 들고 있던 전단지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아고고고 죽겠다 하며 그 위에 주저앉았다. 놀라서 어디 편찮으시냐고 묻자 다리가 아파서 서있질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 식겁해서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하자 아니 사실이 그런데 뭐 얼른 죽어야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을 때까지 늙으면 죽어야지,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시들어빠진 두 문장만 공허하게 오갔다. 날아오는 분비물을 피할 민첩성과 계단을 오르내릴 힘이 사라지기 전에 사이보그기술이 상용화되기를 간절히 빈다.



_그 어떤 SNS도 안하고 고민하던 유튜브도 안하고 한물갔다 말하기도 뭣한 블로그에 돌아와 요즘 트렌드치곤 긴 잡담을 쓰고 연필로 그림그리고 종이책을 읽고 게임마저 윈도우에 내장된 지뢰찾기를 하면서 IT·과학계의 최신뉴스를 열심히 찾아보는 삶. 뭘 좀 알고 도태되면 덜 슬플까. 추가적인 신규진입이 잘 발생하지 않는 오래된 산업(예를 들어 시멘트, 전통공예 등)의 수익률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이 상황에 맞는 얘긴 아닌 것 같다. 내가 주워들은 얘기란 대개 이런 식으로 어딘가 미묘하게 부적절한 시공간을 방황하다 사라진다.



_올봄에도 [내 나이가 어때서] 순회공연이 또 열릴까 모르겠다. 작년 재작년 봄에 사람들이 집앞에서 하루 온종일 저 노랠 불러제끼는 통에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 (특히 그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에서 딱!이 너무 싫다) 지금은 그 주책없는 에너지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또 하루종일 그걸 듣고 앉아있으면 생각이 바뀔 게 뻔하지만, 지금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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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4일_지뢰찾기하다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서 냅다 뛰쳐나왔다. 우울하게 방황하다 습관처럼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가게들이 죄다 문닫은 골목은 회색으로 죽어있었다. 더 우울해졌다. 동네 재래시장에 갔다. 한적하고 규모도 작고 이렇다할 명물이나 매스컴 탄 맛집도 없고 상인들마저 약간 내성적인 시장인데(그래서 좋아하지만) 설은 설이었다. 온 시장통이 사람들로 새까맣게 북적였다. 야 다행히 여기도 명절 특수를 누리는구나. 잘되는 동네 자영업을 보면 기분이 좋다. 반찬집과 고깃집과 떡집이 특히 붐볐다. 갓 뽑은 가래떡을 뚝뚝 떼어 시식으로 나눠주는 손길과 정신없이 전 부치는 뒤집개에서 엄청난 흥이 느껴졌다. 그런데 (당연히도) 모든 점포가 잘되는 건 아니었다. 빵집과 속옷가게는 그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질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속옷이야 두고두고 팔면 된다쳐도 빵집은 같은 음식장사하는 입장에서 속 좀 타겠다 싶었다. 그런데 맘모스와 상투과자와 소시지피자빵과 잘게 썬 양배추와 엉성한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갖춘 전형적인 시장빵집에 인파가 몰리는 걸 본 기억이 있던가. 발렌타인 크리스마스같은 시즌에 붐벼터지는 건 대개 시장 바깥의 '베이커리'다. 그래도 시장빵집 특유의 예스러운 빵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은 분명 존재하니 내 걱정이 무색하게 사시사철 큰 기복없이 갈지도 모르겠다. 시장 하늘을 덮은 캐노피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설맞이 가래떡썰기대회 제기차기대회' 진지하게 나가볼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버렸다. 어릴 땐 저딴 걸 대체 누가 나가냐며 코웃음을 쳤는데 시발 그게 미래의 나였어. 신청일자가 지났음에 슬퍼하고 안도했다.





5일_한번 명절 시장맛을 보니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또 나왔다. 마침 시사인의 신년기획 [대림동에서 보낸 서른 번의 밤]http://daerim.sisain.co.kr/도 읽었겠다 대림중앙시장에 가기로 했다. 12번 출구 밖으로 나가자마자 검은 인파가 먹물처럼 흘렀다. 검은색 패딩은 동북아시아인의 겨울철 유니폼 같다. 나도 먹물 한방울. 냉큼 섞여들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추석의 중앙시장을 봤다. 골목 가득 넘쳐나는 월병 구경하는 게 너무너무 즐거웠다. 설날에는 어떤 풍경일지 궁금했다. 둘러보니 의외로 월병 같은 시그니처 품목이 눈에 뜨이지는 않았다. 스팸이나 과일 같은 한국적 선물세트와 중국술 세트, 그리고 보리수나무 열매로 만든 열쇠고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보리수열매에 관심이 갔다. 먹어만 봤지 장신구로 만든 건 처음 봐서 좀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돈없는 처지에 판매자에게 희망을 주기 두려워 멀찍이서 기웃거리기만 했다. 흥미를 보이며 다가와 열매를 만지작대는 객에게 싹싹하게 효험을 설명하던 판매자는 객이 떠나자 다시 열매들을 가지런히 정돈했다. 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쓰다듬던 그 손이 마음에 남았다. 아무래도 사올 걸 그랬다. 가족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여유로운 표정의 부모와 볼 통통한 애들이 손에손에 호떡이며 꼬치를 들고 웃으며 가고 있었다. 날 따뜻한 연휴라는 게 이렇게나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중국말이 많이 들렸지만 생각보다 한국말의 비중이 높다고 느꼈다. "한국인은 1등시민, 조선족은 2등시민, 한족은 3등시민" "한국에서 '언어(한국어)'는 일종의 권력이고 자산이 된다"는 기사내용이 생각났다. 안쪽길로 더 들어갔다. 고수 당콩 오리알 영채 두리안 그리고 조그만 파란무와 그을렸는지 절였는지 삭혔는지 모를 새까만 사과같이 익숙하고도 생소한 식재료들이 줄지어 있었다. 꽈배기 호빵 만두를 비롯해 닭 메추리통구이 돼지의 온갖 부위로 만든 요리들도 존재감 여전했다. 이번엔 도가니로 추정되는 부위를 하얗게 쪄서 파는 곳이 많았다. 거깄는 내장이란 내장들 종류별로 싹 다 사오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










6일_연휴 막날의 시장이라면 명절 당일 뼛속까지 상혼을 태우고 황량하기 그지없을 터였다. 하지만 재래시장 폐인 돼버린 나는 어디라도 가야했다. 청량리도매시장에 붙은 통닭골목은 왠지 연휴에도 성업중일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내림




어디야




어디냐고



결국 못찾았다. 통닭은 뼈한조각 못 보고 황량함만 스케일 크게 느끼다 돌아가게 생겼다. 그런데 어쩌다 접어든 약초골목에서 의외의 활기를 접했다.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상인과 객들로 제법 북적였다. 덩달아 들떴다가......곧 슬퍼졌다. 객의 태반이 고령자들. 즉 이 골목의 활기는 노인의 육체적 고통이 연중무휴임을 의미한다. 행자는 청량리를 싫어했다. 노인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생의 에너지에 질식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 청량리가 싫지 않다 말하며 이 일대에 예정된 개발호재 주워들은 얘기 몇 가질 덧붙였다. 행자는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네.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까. 조만간 통닭골목 다시 찾으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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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지뢰찾기 게임 횟수 현재 5154판. 이 글을 올릴 때쯤이면 분명 더 늘어있겠지.



_순대국집 옆자리에 초로의 운수업 종사자 둘이 앉았다. 마침 TV 뉴스에선 우버 등 차량공유경제와 이에 따른 일자리급감 화두가 나왔다. 곧 엄청난 비분강개의 언어가 쏟아질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그들은 차분히 자신들의 예정된 퇴장과 소멸을 얘기했다. 기품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자기 존재가치의 소멸을 관조하는 것만이 AI시대에서 인간이 존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가 싶어 스산해졌다.



_순대국집 만두국집 국수집 사이시옷 아직도 너무 쓰기 싫다. 근데 귀갓길은 아무렇지 않게 쓴다. 나는 먹을것에 감히 시옷이 끼어드는 걸 용서할 수 없는 것 같다.



_버스 앞자리 노인이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 눈치인데 하차준비가 좀 많이 늦었다. 역시나 버스는 노인이 하차단말기에 카드를 찍기도 전에 문닫고 출발. "내려줘요!!! 기사양반 내려주시요!!!" 노인의 외침에 기사는 뭘 씨 아무데서나 내려달라 그래, 하고 짜증내며 차를 세웠다. 순간 내 바로 뒤에 앉은 사람이 낮게 숨죽여 웃었다. "후후훗쿠쿠쿸쿠쿸" 굼뜬 노인이 면박당한 걸 고소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웃음. 섬뜩했다.



_마음에 담은 몇몇 사람들이 더는 고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건강하고 돈 많이 벌고 즐겁게 살길 바란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몇몇 사람들은 망했으면 좋겠다. 너무 폭삭 망하지는 말고 딱 내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을 만한 선에서, 한달에 두어번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며 술자리에서 푸념하는 여유쯤은 누릴 수 있도록 인간답게 망하기를 빈다. 하지만 이들의 건강만은 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디 튼튼한 육체와 말짱한 정신으로 볼품없는 삶을 오래도록 견디길 기원한다. 



_방금 엄마가 이런 카톡을 보냈다. 조금 웃다가 왠지 슬퍼지면서 맴씨를 곱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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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겪는 문제의 원인은 나도 알고 A도 알고 다 알았다. A는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좋아했다. 현재 A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 둘은 누가 봐도 상종 못할 부류였다. 하지만 A는 자꾸만 정을 줬고 그들은 그걸 새새끼처럼 처먹곤 더 달라며 A를 쥐어짰다. 너 같으면 어떻게 할 거야? A의 물음에 답했다. 일단 절대 안 만날 거고, 계속 귀찮게 하면 녹취 뜬 거 보여주면서 고소한다고 아주 거품물고 팔팔 날뛸 거야. 그쪽이 먼저 질려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듣던 A가 말했다.


그러면 외롭잖아.


할말이 없어졌다. 너는 안 외로워? 외로울 때 어떻게 해? A는 알까. 아 당연히 나도 사람인데 외롭지, 외로운데, 사람 때문에 귀찮고 괴로운 게 외로운 것보다 훨씬 싫으니까 어느 시점부턴 그냥 별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안 만나지더라고. 우리가 지금 이 질문과 답변을 몇 번째 고대로 되풀이하고 있는지를. 한동안 잠자코 있던 A가 말했다. 너는 참 쿨하다. 하긴 옛날부터 쿨하고 시원시원했지 너는. 귀를 의심했다. 이건 새로운 패턴이다. 아니 내 대답이 쿨해? 딱 봐도 어디에 크게 데인 유리멘탈 인간 특유의 호들갑스런 방어태세 아닌가. 애시당초 내가 인간관계 앞에서 쿨하고 시원시원하게 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관계에든 질척임과 망신과 후회의 지뢰가 점점이 박혀있다. A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우리는 서로의 정신과 육체가 특출나게 추했던 시절을 함께 겪었다. 아.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A가 이런 접대성 왜곡을 하는 것도 같다. 미친 쿨은 무슨 아까 한참을 말했잖아 나 관계쓰레기라고. 아냐 너는 늘 멋졌어. 멋지기는 씨발 솔직히 네가 백만 배는 더 멋지다. 아니지 진짜 멋진 건 너지. 아니라니까 너라니까. 너 진짜 멋지다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게 문제다. 가뜩이나 없는 친구마저 적어지는 처지에 서로 아픈 구석이 어딘지를 너무 잘 아니까 필사적으로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 핥아주고, 그러다 덕담배틀 일어나고, 하다하다 결국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멋짐대폭발사태로 치닫는 것이다. 멱살잡을 기세로 서로의 멋짐을 찬양하던 우리는 뒤늦게 신성한 술상머리에서 이게 다 뭔짓인가 싶어 조용히 술을 퍼마시고 콩나물처럼 꾸부러졌다.


돌아오는 길은 한숨으로 뒤덮였다. 내 이미지를 터무니없이 고평가하는 것에 화들짝 놀라 그걸 깎아내리는 데에만 급급해서 A의 고통과 외로움엔 신경도 안 썼다. 참 나답게 철딱서니없는 행동이었다. 해서 귀가내내 육성으로 아이고! 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어뜯는 요란한 퍼포먼스를 하긴 했는데, 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의 원인인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을 대충 정리하면 1) 진정한 사랑과 관심과 시간을 꾸준히 투입해주는 사람 만나기 2) 체념. 나같은 2지망에게 1지망의 A가 원하는 고급자원이 있을 리 있나. 설령 있다해도 내가 그걸 기꺼이 내어줄 인간인가. 모르겠다. A와 내가 서로 친하기를 원하는 한, 아마도 우리는 잊을 만하면 만나서 같은 질문 같은 답을 하고 서로의 멋짐을 칭찬하는 데 머리를 쥐어짜다 탈진해 쓰러지고 다음날 쑥스럽게 헤어지겠지. 그 시간동안만이라도 다른 골치아픈 걸 잊을 수 있다면 솔직히 그게 어딘가 싶다. 내가 해도 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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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블로그 어떡하지

이왕 굴릴 블로그 대표포털에서 해보자는 얕은 마음으로 옮겨가려 했으나 

티스토리 너무 조강지처같고 맘에 걸려 차마 떠나지를 못하겠네


몰랐는데 조강지처의 조가 술지게미 조였어

술지게미랑 쌀겨로 연명하며 함께 고생하던 마누라

조강지처 음

고사성어 중에서도 괜히 애틋하고 정이 가더라니

음 마누라랑 술먹은지 오래됐다




- 위 문장 쓰고 한시간동안 지뢰찾기했다 미친년 진짜

술을 안 처먹으니 지뢰찾기에 빠져가지고


지뢰를 이제 거의 반사신경으로 까는 지경이 됐는데


자꾸만 테러집단이 막 방에 들이닥쳐서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지뢰찾기 고급단계를 깨라고 실패하면 쏴버린다고 협박하는 상상에 빠져버린다

너무 긴장해서 손떨다가 세 턴만에 지뢰밟고 총맞아 죽는 상상




- 이유를 모르겠는데

뭔가 인생에 썩 도움될 것 같지 않은 일에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투입하는 것 같다 싶으면

반드시 테러집단이 달려온다


한번에 네 시간씩 넣어주는 노래방에 빠져서 혼자 밥먹듯이 노래부르러 갔던 시절

테러집단이 또 막 내가 있는 방에 들이닥쳐서는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가사보지말고 노래부르라고 한 글자라도 틀리면 쏴버린다고 협박하고

나는 막 떨려가지고 목에서 염소소리나고 그러다 가사 틀려서 총맞아 죽는

그런 상상 속에서 툭하면 허우적댔지

이건 뭔놈의 파국적 사고인지




- 늘 무엇엔가 미쳐있긴 한데

제대로 미쳐서 끝장을 본 경험은 한 번도 없다

맨날 미치다 말았다

지금은 부동산과 고구마에 미쳐있다

이 사랑은 과연 언제 끝날지


어쩌면 상상 속 그 테러집단은

나를 끝까지 미치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제어장치일까

대체 무엇을 위한 제어일까

씨발 이거 고민하다 또 지뢰찾기켰어




- 생각해보니 몇 년 전 홍대 그 스파오 사거리 전광판에

지뢰찾기하다 오류나서 굳어버린 데스크탑 화면이 한참동안 떠있는 사고가 난 적 있었지

그 전광판 담당자분 잘 살고 있는지 괜히 궁금하네





초보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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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세요


제발 글을 쓰세요


마지막 부탁입니다





글 쓸 자신이 싹 없어져서 죽어지내다 담당자의 저 말에 더럭 겁먹고 아무거나 쓰기로 했다. 신뢰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이라는 말은 무섭다. 바로 앞의 문장을 쓰고 사흘간 지뢰찾기에 몰두했다. 총 게임횟수 4천판을 넘었다. 구린 글을 쓰는 것도 모자라 전시해야 한다는 게 괴롭다. 내 문장 특유의 느낌이 너무 역겨워 죽겠는데 이걸 또 어떻게 견디냐. 이짓거릴 신이 나서 몇 시간이고 했던 때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자기애와 과시욕에 휘둘리던 시기. 잠깐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어지지만 글은 기특하게 자주 썼다. 자기애고 지랄이고 그딴 거 다 고갈된 자리를 수치심이 채워버린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수치심은 창작의 효율을 낮춘다. 망신에 대한 백신이나 보험 노릇을 하라고 깔려있는 감정일 텐데 내 것은 왜 이리 덩치만 크고 미덥지 않은지. PC 성능은 있는대로 갉아먹고 랜섬웨어엔 속수무책인 액티브엑스 공짜백신 혹은 막상 일 터지면 돈 한푼 안 주고 튀어버릴 보험회사 같은 나의 수치심....따위의 비유를 생각해냈다는 게 또 한 번 수치스럽다. 혹시 글쓰기란 원래 수치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반짝 희망을 느꼈다가, 수치심에 태생적인 정당성이 부여된다 하여 희망을 가질 건 또 뭔가 싶어 다시 가라앉았다. 근데 계속 싫다 싫다 힘들다 괴롭다 하다보니 이상하게 또 조금씩 뭔가를 쓰고 싶어졌다. 하기 싫은 일은 왠지 인생에 유익할 것 같다. 요컨대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정신. 어쩌면 고생페티쉬. 암튼 가뜩이나 부족한 참을성이 근래에 더 떨어져서 하기 싫은 걸 계속 피하고만 있었다. 속 편하게 피하기만 하면 좋으련만 이렇게 살다간 끝내 인간쓰레기로 죽게 될 거라는 공포로 정신이 병들어가던 차였다. 글쓰기가 이에 효험을 발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요즘 건강식품에 대한 집착이 부쩍 커졌는데 글쓰기만큼 정신건강에 쓴 약도 드물다는 걸 깨달은 거지. 기를 쓰고 쪽쪽 빨아먹을 거다. 담당자가 이런 글을 바랐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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