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_매끼 고구마를 배불리 먹고 있다. 일주일 내내 먹었는데 전혀 안 질리고 계속 먹고 싶다. 캥거루 고기를 먹었다. 씹는 맛은 말과 비슷했는데 말보다 약간 더 거슬리는 육향이 났다. 남은 부분을 잘게 찢어 대파와 매운 고추를 썰어넣고 캥거루 육개장을 만들었다. 아주 맛있었다. 인근 마트에서 돼지껍데기 한근을 1000원에 판다. 내가 아는 중에 가장 싼 고기라 종종 한두 팩 사오는데 어젠 웬일인지 800원이었다. 다섯 팩 샀다. 흙 묻은 무 세 가마니를 순식간에 세척했다. 어쩌면 육체노동에 꽤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4-5시간밖에 못 잤는데 잠이 부쩍 늘었다. 6시간씩은 꼬박꼬박 채운다. 친구들에게 고구마를 줬다. 기뻐해줘서 기뻤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순간이 너무 좋다. 그저께는 지하철 옆자리에 도마뱀이 든 수조를 소중히 끌어안고 가는 아이가, 어제는 지네매니아 청년이 앉았다(내리기 직전까지 계속 지네 사진을 찾아보고 휴대폰 배경화면도 왕지네였다)



bad_좁은 집에 고구마가 너무 많다. 현관, 부엌은 물론 침실에까지 고구마가 굴러다닌다. 집구석 어딜 디뎌도 흙모래가 버석버석 밟힌다. 옷 갈아입다 뱃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간 먹은 고구마가 고대로 거기 붙어있었다. 다이어트식품이고 뭐고 실컷 처먹으면 아무 의미없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올해 고구마 풍년이라고 완전 똥값됐다고 하는 버스 뒷좌석 할머니들의 대화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손목과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 이것들이 시한부의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앞으로 꾸준히 의식하며 살게 되리라는 예감에 울적해졌다. 휴대폰 지문인식이 잘 안 된다. 설마 지문이 닳은 건가. 아니 뭘 얼마나 일했다고...누가 보면 평생 김밥 말아 모은 돈을 기부한 할머니인줄. 근데 한번 닳은 지문은 회복이 불가능한가. 왜 무채색에 주머니 달린 수면바지는 없는 건지 궁금했는데, 있었다. 비쌀 뿐이었다. 형광원색 꽃무늬 수면바지 값의 두 배였다.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꽃무늬를 고를 때 세상 다시 없을 굴욕감을 느낀다. R과 처음 인도커리를 먹었던 가게가 폐업했다. 시간이 없다. 진짜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관리에 실패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글에 대한 근심걱정이 날로 깊어만 간다.

 

다시 good_한번 닳은 지문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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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_관상용인줄로만 알았던 집앞 꽃사과나무가 실은 식용 산사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나무 아래서 열매를 줍는 할머니에게 직접 물어봤다. 초면의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은 내게 굉장히 힘든 일인데, 용케 물어볼 생각을 하고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게 아주 대견해 죽겠다. 참고로 할머니는 그 산사열매로 효소와 술을 담근다고 한다. 한때 만원돈이었던 계란 한판이 4980원까지 떨어졌다. M님의 메일을 받고 정말 너무 기뻤다. M님은 영어를 쓰고 나는 한국어로 답했는데, 서로 다른 언어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뭔가 따뜻한 마법같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bad_고구마를 오래 보관하려면 신문지가 많이 필요한데 눈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난생 처음 신문지 11Kg을 돈 주고 샀다. 집에 쌓인 신문지 뭉치를 학교 폐품 수거일에 왕창 갖다냈던 일이 전생처럼 느껴진다. 뽀모도로 타이머로 한동안 순조롭게 작업하나 했는데 몸 안 좋고 울적한 요즘 같은 땐 아무 소용없다. 50분 작업-10분 휴식 루틴이 10분 작업-50분 휴식으로 망가져버렸다. 꾸준히 일기를 올리는 어떤 블로그를 보다가 지나치게 재밌어서 기분이 상했다. 글에서 막 진정성 생동감 유우머 따위가 막 넘쳐나고 난리났는데 그 블로그 주인도 지 글 지가 재밌는 거 알고 신나서 쓰는 게 너무 느껴져 존나 얄미웠다. 내 글이 구리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급기야 유튜브에 '에세이 잘 쓰는 법'을 검색해버렸다. 뾰족한 답은 당연히 못 얻었고 (유튜브에서 가장 뾰족한 건 썸네일에 박힌 제목이다) 이걸 검색했다는 사실만 죽도록 수치스러웠다. 동네의 익숙한 가게들이 망해나가고 있고, 그 빈 자리를 24시간 무인 찌개 판매점이 채우고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쾌유를 빌어야만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나 자신도 거기에 추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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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와 파를 뽑고 대추를 따고 당근과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밭에서 지옥을 맛봤다. 고구마가 감자보다 왜 비싼지 너무 잘 알겠다. 감자보다 더 천천히 자라고 훨씬 불규칙하게 생겼으며 위치파악이 어렵다. 생각 없이 땅을 파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고구마를 호미로 콱 찍거나 뚝 부러뜨리기 십상이다. 상처는 쉽게 썩고 썩은 상처는 고구마맛을 통째로 오염시킨다. 도려내고 먹어봤자 멀쩡한 부분도 이미 씁쓰름하다. 또다른 의외의 난관은 흙이었다. 캐다보면 앞뒤양옆으로 흙무더기가 쌓인다. 이것이 다음 고구마 발굴에 방해가 된다. 적당히 치워가며 작업해야 하는데, 이 누적된 흙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불도저마냥 파고 캐고 쌓인 흙 밀고 파고 캐고 쌓인 흙 밀고를 반복해야 했다. 팔힘이 쭉 빠졌다. 힘이 빠지니 호미질이 거칠어지고 고구마를 찍는 빈도가 높아졌다.

문득 감자와 고구마값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0월 현재 감자 10Kg 7천원~2만원선 고구마 10Kg 3~4만원선(인터넷 소매가). 돈을 의식하며 일하니 본격적으로 정신이 축났다. 고구마가 다치고 부러질 때마다 육성으로 윽!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마음에 충격이 갔다. 곧 심신이 완벽하게 너덜너덜해졌다. 결국 하루 목표치를 반도 못 채우고 나자빠졌다. 홋카이도 농부의 딸이자 [강철의 연금술사] 작가인 아라카와 히로무가 머슴이 밥 퍼먹듯 척척 마감을 치던 것이 이해가 됐다. 이 미친 업무강도에 단련된 몸이라면 웬만한 노동은 우습게 해낼 법도 하다. 몸에 안 아픈 곳이 없다.

 

지주에게 작업량 보고를 하자 하이고 고거밖에 못했냐며 내가 갔더라면 그 일 다 하고도 남았을 텐데, 하고 어쩐지 약간 즐거운 듯 혀를 끌끌 찬다. 민망하고 면목 없는 한편 웃어른이 자신의 우월한 노동력을 뽐내는 모습에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노화로 인한 무능력이 더할 나위 없이 굴욕적으로 느껴지는 시대에 뭐 나름 값진 모먼트를 선사해드리지 않았나, 이런 게 바로 신개념 노인공경이 아닌가, 하는 시건방진 생각을 한 거죠.

 

유튜브에서 농사 노하우를 종종 찾아본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 는 말도 좀 적당히 걸러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구의 성능이 너무 발전해버렸다. 이제 저 격언은 과소비를 경계하는 차원에서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작업 중간에 목 허리 골반 손목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 허수아비처럼 밭 한가운데 서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허수아비 - 누가 봐도 사연이 있게 생긴 그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지더라. 일단 허수공허하다 할 때 그 허짜랑 지킬 수짜를 써서 가짜로 지키는 아비 뭐 그런 설이 있을 거 같고 또 다른 유력한 설로 이름이 허수인 아이의 아버지와 관련된 일화가 있겠거니 했는데, 검색해보니 얼추 비슷했다. 다만 애 이름이 허수라는 설정이 들어간 일화들은 하나같이 지긋지긋하게 처절하고 끈끈한 가족과 가난과 죽음의 서사시라, 숨이 막혀서 막판 몇 개는 매직아이처럼 대충 째려보고 넘겼다. 드물게 허수가 여자아이인 버전도 있었는데, 어이쿠 아니나 달라 허수는 엄청난 미녀라는 설정이 따라붙었다. 허허허허허허 징글징글해 아주 그냥.

 

꿀고구마와 밤고구마를 반반 심었다는데 아무렇게나 캐담아서 구별이 불가능했다. 호미에 세게 찍힌 것 몇 알을 골라냈다. 고구마는 캐온 뒤 2주 정도 후숙을 해야 달콤해진다는 걸 알지만 상처입은 놈들은 어차피 2주도 안 되어 썩을 테니 바로 쪄먹기로 했다. 맛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포슬포슬 갈라지며 목이 콱 막히게 팍팍한 꿈의 밤고구마였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고구마에 기대하는 당도보다 확실히 덜 달았지만 그게 또 매력 있었다. 아빠도 좋아했다. 그간 마트 같은 데서 밤고구마라는 걸 사와도 질척거리는 일이 잦아 짜증났는데, 이거는 옛날에 먹던 딱 그 밤고구마라고 했다. 혹시 옛날엔 후숙을 하지 않고 밭에서 캐자마자 내다 팔았던 걸까? 혹시 종자에 상관없이 캐자마자 먹으면 다 밤고구마 느낌 나는 거 아냐? 호박고구마조차? 많은 물음표를 뒤로 한 채 정신없이 고구마를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나 먹었는데 지금도 또 먹고 싶다.

 

농사일에서 해방만 되면 마감노동쯤 히로무 선생처럼 그냥 껌으로 해치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드럽게 힘들고 지지부진한 건 전과 다를 바 없다. 오늘도 노트북 앞에서 속만 끓이다 목표치를 반도 못 채우고 나자빠졌다. 창작은 내게 농사일과 쓰는 근육이 다른, 아니 실은 근육도 굳은살도 생기지 않아 영영 그 고통에 적응할 수 없는 그런 일인 것 같다.

 

온 집안이 상처 입은 고구마들로 난장판이다. 이것들을 제때 소비할 자신도, 그 개고생을 하며 캔 것들이 서서히 쓰레기가 되어가는 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자신도 없다. 불운이 겹쳐 농작물을 제손으로 갈아엎어야 하는 전업농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짐작도 못하겠다. 하여간 고구마를 장기보관하려면 구워서 냉동하거나 감자칩처럼 썰어 말리거나 해야 하는데, 냉동할 공간도, 썰고 있을 시간도, 말릴 도구도 없다. 모든 게 가능하면 몇 달치 탄수화물 저장이 해결되는 건데. 애써 확보한 식량자원의 앞날은 이렇게 노동력과, 첨단 테크놀로지와, 부동산의 문제로 귀결되는군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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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_내 무능에 조금은 적응한 것 같다. 글 쓰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늘리고 있다. 뽀모도로 시간관리법이 효과가 있다. 글을 쓰다가 슬슬 잠이 온다 싶을 때 대작가의 책을 필사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좋은 문장의 각성효과란 대단한 것임을 즐겁게 실감 중이다. 이 와중에 책을 꽤 읽었다. 스쿼트를 많이 했다. R이 잘 살고 있는 듯하다. 옛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미허브 잎을 깔끔히 다듬었다. 화장지를 싸게 샀다. 미세먼지 농도가 연일 좋다.


bad_날씨가 계속 나쁘다. 필사를 통해 잠을 깨워봤자 내 글을 쓰기 시작하면 바로 또 졸립다. 체체파리에 물린 것처럼 잠이 온다. 세상에 체체파리라니 대체 언젯적 파리인가. 옛날 만화백과사전에서 본 뒤로 진짜 백만년만에 떠올린 듯. 어릴 때 이 체체파리가 수면병을 옮긴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무척 기르고 싶어했던 기억이 난다. 수면병. 자다가 죽는 병. 개꿀. 그러나 수면병을 검색해보고 그 실상에 절망했다. 체체파리는 박제된 옛 기억 따위가 아니라 현재도 기승을 부리는 해충이며 그들이 옮기는 수면병은 자다가 쾌적하게 깩 죽는게 아니었다. 망가진 신경으로 인하여 몇년간 고생하다 죽는 병이었다. 잠은 신경손상의 한 증상일 뿐 다른 증상으로 지겹게 고통받다 죽을 확률이 적지 않았다. 역시 인간은 그리 쉽게 개꿀이 허용될 팔자가 아니다. 일하던 중간에 갑자기 그 옛날의 어떤 모임들 - 어쩌면 나를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었던 중요한 자리에서 내가 뱉었던 개같이 부적절한 말들이 생각나서 한동안 심신이 정지됐다. 빠바 35주년 사은품인 롤케이크 담요가 갖고 싶어졌다. 사은품이 너무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기분은 십억년 전 맥도날드 해피밀 스누피 인형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담요를 받으려면 빵을 이만원어치나 사야 한다. 아마 못 살 것이다. 일감 하나가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오지 않았다. 아직 안 온 걸까, 잘린 걸까. 내일까지 안 오면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불안초조두근두근 막 난리났다. 사회적스킬 공적의사소통능력 회복탄력성 뭐 이런 거 이제 진짜 좀 갖추자 제발. 그나저나 유튜브 중독자의 기억 저 카테고리 비어있는 거 너무 신경쓰인다 뭐라도 빨리 채워넣고 싶다. 살인적인 스케줄에 별거별거 다 해내는 사람들을 최근 하도 많이 봐서 시간 없다는 핑계는 차마 양심상 못 대겠는데 이거저거 걱정하느라 진짜로 시간이 없다...


다시 good_수면병 경구치료제가 7월 FDA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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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_여전히 글 쓰는 양이 적어도 너무 적다. 질도 나쁘다. 모든 문장이 본심보다 무디거나 낯 뜨겁게 과장돼있다. 글을 위해 억지로 꾸며낸 감정을 어디서 본대로 대충 나열하고 있다. 글 한줄 쓰고 이게 아닌데, 또 한줄 쓰고 아 진짜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다. 나는 내가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어쩌면 내게 가장 맞지 않는 글이 에세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 와서 들어버렸다. 옆집에서 싸움이 났다. 담배연기가 원인이었다.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존댓말이 반말로 바뀌고 기어이 개새끼소리까지 오가는 상황이 돼버렸다. 한쪽이 상대를 칼로 찌르거나 난간 아래로 집어던지는 참사가 벌어질까 무서웠다. 술 퍼먹고 개소리를 했다. 발목이 자꾸 접질린다. 뱀에 물릴 뻔했다. 차에 치일 뻔했다. [용과 주근깨 공주]를 봤다.

 

good_어쨌든 죽지 않았다. 백신 접종 완료 후 아직까진 무탈하다. 쥬시팡을 하지 않았다. 아보카도를 개당 500원에 샀다. 이번 주에는 운동을 조금 했다. 옆집의 싸움은 조용히 일단락된 듯하다. 나를 시기질투의 지옥불에 던져놓았던 작가의 책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필사를 제대로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꼬인 심보를 펴는 데에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처방이었다. 작가의 재능 일부에 소유권이 생긴듯한 착각이 들면서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의 무능에 일일이 놀라지 않기로 했다. 나카무라 카호中村佳穂라는 뮤지션을 알게 됐다. 엄마와 산책했다. 가지 오이 당근 토마토 콩 호박 부추 깻잎 고구마를 수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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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공식적인 화이자 백신 1, 2차 접종 간격 권고기한이 3주라는데, 2차 접종 예약일은 6주 후. 라면 하날 끓여먹어도 포장지 뒷면의 조리예를 칼같이 지켜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이 상황이 찜찜해서 참을 수 없었다. 앞당길 방법이 없나 안절부절 못하던 중 917일부터는 18~491차 접종자도 잔여백신으로 2차 접종 예약이 가능하다는 기사가 떴다. 냉큼 집에서 가까운 병원 다섯 곳을 골라 잔여백신 알림설정하고 정확히 3주가 되는 D데이를 기다렸다. 잔여백신이 생겼다는 알림이 생각보다 굉장히 자주 들어왔다. 일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알림들을 가만 지켜보니, 화이자 백신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알림이 뜨자마자 광속으로 사라졌다. 자주 뜨는데, 빨리 마감된다. 난이도 중상급의 두더지게임이었다. 모두가 화이자라는 두더지를 노리고 있다가, 떴다 하면 미친 듯이 달려가서 망치로 두들겨 가루를 내놨다. 오직 화이자만. 그에 비해 모더나 두더지는 완전 이지 모드로서 한꺼번에 10마리가 머리를 내놓고 있어도 건드는 자가 많지 않았다. 아 나 선착순 이런 거 진짜 못하는데. 어쩌겠나. 틈틈이 선착순 터치질 훈련을 하며 운명의 날을 기다렸다.

 

당일] 오전 9시 땡 치자마자 한번에 화이자 7개가 떴다. 터치하니 바로 예약됐다. 뭐야 이거. 나 된 거야?? 20초쯤 어리둥절 상태로 있다가 앞으로의 절차를 검색했다. 예약된 병원에서 언제 오라고 전화해줄 거라는 말도 있고, 내 쪽에서 전화해서 예약을 잡아야 한다는 말도 있고, 그냥 바로 병원으로 뛰어가라는 말도 있었다. 아 나 자유도 높은 게임 질색인데. 10초쯤 고민하다 예약된 병원에 전화했다. “당장 오셔야죠??” 직원의 채찍 같은 목소리에 후다닥 병원으로 달려갔다. 1차 접종한 OO한방병원 바로 옆 건물 XX의원이었다.

병원 문을 열자마자 생각했다. 씨발... 1) 존나 좁고 낡았다. 2) 중노년들이 바글바글했다. 사실 직원의 전화응대부터 느낌이 썩 좋지 않았지만 안전거리가 지켜지기는커녕 앉아서 대기할 데도 없는 병원 상황을 눈앞에 마주하니 잔여물량 나왔다고 무턱대고 예약한 게 후회됐다. 깔끔하고 친절한 OO한방병원이 그리웠다. 하지만 이제 와 뒤엎자니 생각만으로도 귀찮아져서, 북새통을 뚫고 들어가 안내데스크에 비치된 문진표를 작성했다(발열호흡기질환알러지어쩌구없음). 그런데 문진표의 상태가 엄청났다. 전체적으로 회색 잡티가 가득하고 시꺼먼 줄이 문서 전체에 바코드처럼 좍좍 그어져있었다. 망가진 스캐너로 스캔한 서류를 망가진 프린터로 뽑아서 망가진 복사기로 복사해 내놓은 것 같았다. 잡티와 검은 줄을 겨우겨우 피해 이름과 주소를 적고 신분증과 함께 데스크에 제출하려는데, 누군가 새치기를 했다. 아담한 체구의 백발 할머니였다. 진찰받고 돌아갔다가 처방약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를 물으러 다시 올라온 눈치였다.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짜증을 겨우 억누른 티가 역력한 직원의 대꾸에 할머니가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릴 웅얼거렸다. “아니 내가 나가가지구...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약을 어디서 타야 되는지...약이름이 뭔지도 모르겠구...약국이 어딨는지...” “1층에 약국 있잖아요! 거기 가서 처방전 내시라고요!”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버벅대는 노인의 모습이 더는 남의 일 같지 않긴 하나 아직까지는 직원의 짜증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편. 할머니의 퇴장에 안도하고 돌아서서 인구밀도가 그나마 적은 구석의 벽을 보고 섰다. 곧 직원이 누군가를 크게 호명했다. 나랑 이름 되게 비슷하네, 하며 벽보고 서있는데 두세 번을 더 호명한다. 설마설마했는데 내 이름을 잘못 읽은 거였다. 염병씨병 진짜...뒤돌아서 집으로 가버릴까 하다가 신분증을 받아들고 직원의 손짓에 따라 주사실로 머뭇머뭇 들어갔다. 의심은 드럽게 많은데 정작 중요한 땐 생선통조림처럼 순순히 컨베이어벨트에 몸을 맡기는 나 자신에 대한 걱정과 분노로 벌써부터 열이 나서 몸져누울 것 같았다.

접종은 1차 때처럼 30초도 안 돼 끝났다. 심지어 1차보다 덜 아팠다. 놀라운 건 주사를 놔준 직원의 태도였다. 신경질적으로 전화 받고, 방문자에게 짜증내고, 내 이름을 잘못 부른 그 직원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말투로 접종 이후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사람 진짜 내가 주사 맞고 어떻게 될까봐 나 자신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는 거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다정다감함이었다. 행정일을 할 때는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한 방울도 용납하지 않다가, 아껴둔 그 정신력을 의료행위에 몽땅 쏟아붓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거 정말 대단한 직업정신이지 않은가, 하고 감탄하며 주사실 앞에서 15분을 보내고 병원을 나섰다.

 

증상]
7시간 경과_경미한 팔 근육통. 금강막기 쉽게 가능. 체온 36.
9시간 경과_원래 수족냉증이 심한 체질인데 손발이 기분좋게 따끈따끈.
타이레놀 먹지 않고 취침.
19시간 경과_온몸이 따끈따끈.
20시간 경과_어제보다 팔 통증 강해짐. 1차와 비슷한 강도.
특이하게도 이번엔 금강막기는 잘되나 넥스트레벨 동작할 땐 확 아파짐.
21시간 경과_체온 36.1. 금강막기도 좀 힘들어짐. 그래도 견딜만함.
36시간 경과_팔 통증 감소세. 가장 아팠을 때도 무거운 물건 무리없이 운반.
48시간 경과_팔 통증 희미해짐. 아주 약한 두통. 여전히 따끈따끈한 손발.
54시간 경과_영화관에서 체온측정.
계속되는 열감 때문에 체온이 높게 나올까 걱정했는데 36.6.
72시간 경과_평소와 컨디션 동일.

이번에도 질병관리청에서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고 별일 없다고 답했다.
이렇게 백신접종자가 되었다.
홀가분하면서도 백신 효과 기간과 변이 바이러스 등을 생각하면 착잡해진다.
이 와중에 먹는 코로나 치료제가 연내 출시된다는 뉴스가 보도됐고,
그 서슬에 몇몇 백신 관련주가 폭락했다고 한다.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인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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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_쥬시팡을 또 하면 사람새끼도 아니라고 그렇게 이를 갈아놓고 결국 또 손을 댔다. 눈이 아프고 뻑뻑하다. 시력이 걱정될 정도로 떨어졌다. 머리를 감으면 저절로 염색이 된다는 샴푸를 비싼 돈 주고 사서 쓰는 중인데 검은 머리만 갈색이 됐고 정작 중요한 흰머리는 전혀 변화가 없다. 한달 개근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앱테크 출석체크를 하루 빼먹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땅을 치며 뒹굴었다. 운동 루틴이 완전히 무너졌다. 집밖을 나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오징어게임]을 봤다. 내가 죽었다 깨나도 못 만드는 작품이 초대박나는 걸 언제쯤이면 담담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 플랫폼이 자사에 연재하는 작가들에게 인공지능 웹툰 제작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러프스케치를 하면 펜선을 따주고 채색도 자동으로 된단다. 완전히 도태되어 실직자가 되는 날이 이제 정말 코앞에 닥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good_그래도 쥬시팡을 2시간 정도밖에 안 했다. 술을 먹지 않았다. 5일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예전에 응모한 이벤트에 당첨돼서 3000원이 들어왔다. 뒤통수의 새치들이 금발로 변해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제때 다 읽고 반납했다. 인공지능이 끝끝내 커버 못할 영역과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통하여 개척 가능한 새로운 영역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딱히 뾰족한 결론은 못 냈지만 굶어죽을 때 죽더라도 굳이 서둘러 위축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변방의 오랑캐년이 씨발 가오가 있지 주눅들면 그냥 바로 뒤진 목숨인겨. 나를 열등감에 빠뜨린 뛰어난 인간들이 내 삶을 얼마나 재밌는 지옥으로 만들어줬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즐겁다(몇 년 째 떠올리고만 있다는 자괴감만 제쳐둔다면). 작업할 때 밥 로스 아저씨 영상을 틀어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알았다. 잡곡밥에 채소된장국을 넣고 비빔밥을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아보카도를 꽤 싸게 샀다. 엄마가 나한테 직접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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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OO한방병원으로 예약.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라는 이유로 선택했는데, 뒤늦게 걱정이 됐다. 1) 생긴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지역사회의 검증을 충분히 받지 못한 곳임. 2) 가장 우려되는 지점. '한방'이라는 두 글자. 물론 한방'병원'에서 각종 수액 영양주사 많이들 놓는다는 거 알고 있지만 이왕 할 거면 뭐든 전문점, 원조집에서 하고 싶은 심리가 있잖아. 양의학의 정수인 백신주사를 한방병원에서 막 맞아도 되겠냐 이말이야. 그래서 좀 떨어진 곳의 대형병원으로 예약을 옮겨볼까 하다가, 마침 유명한 큰 병원에 접종하러 갔는데 일반진료환자랑 백신접종자가 뒤섞여 그런 개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는 어떤 이의 후기를 발견했고 또 예약 변경할 경우 이래저래 성가신 추가적 절차가 뒤따른다기에 벌써 귀찮아져서 그냥 원래 예약을 냅뒀다. 온도계 택배가 도착했다.


당일] 백신 핑계로 맛있는 걸 먹었다는 후기를 많이 봤다. 백신접종이 외식업 소비에 미친 긍정적 영향이 분명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돼지껍데기를 먹었다. 시간 맞춰 병원에 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약간 놀랐다. 1) 생각보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대기공간도 넓고 쾌적했다. 2) 그 넓은 공간에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했다. 1)2) 모두 내가 하자 없는 백신을 제대로 접종받고 무탈히 귀가하는 것과는 크게 상관없는 요소들인데 괜히 안심됐다. 인테리어와 웨이팅이 만들어낸 권위에 이렇게나 잘 현혹된다 내가. 30초쯤 앉았나 했는데 이름을 부른다. 접종 전 유의사항에 대해 원장과 면담을 해야 한단다. "알러지없으시죠기저질환없으시죠뭐약드시는거없으시죠접종후3일간술담배안되시고무리한육체활동하지마시고자극적이고기름진거드시지마시고..." 골백번도 더 읊었을 유의사항을 래퍼처럼 쏟아내는 원장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되게 돈 잘 벌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대충 끄덕였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이렇게 대충일 수가 없었다.
바로 주사실로 가서 왼팔에 접종을 받았다. 30초도 안 되어 끝났다. 웬만한 주사보다 덜 아팠던 것 같다. 저기 뭐냐 백신 그거 유통기한은 안 지났는지 적정온도에서 잘 보관한 건지 몹시 궁금했지만, 못 물어봤다. 어차피 물어봤자 괜찮다 그러겠지 아이고 죄송합니다 상온에 방치해서 푹 썩은 걸 그만 환자분께 쏴드리고 말았네요 할 리도 없고. 주사실 앞에서 15분을 대기했다. 복도 벽에 굵은 고딕체로 '우리 병원은 전문 의료진이 백신을 접종합니다'라고 쓰여있다. 엄밀히 따지면 아무 공신력도 없는 글귀이지만 아까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안심됐다. 활자의 권위에 이렇게 또 약해요 내가. 병원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영양주사, 도수치료, 침, 부항, 비만/피부클리닉 등의 홍보문구가 붙어있다. 동네병원의 백신접종이 신규 고객 확보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15분 경과. 별 일 없기에 귀가했다.


증상]
2시간 경과 - 미열감.
4시간 경과 - 조금씩 왼팔이 뻐근해짐. 몸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지는데 체온은 36.1도.
12시간 경과 - 팔 통증이 강해졌으나 금강막기, 넥스트레벨 동작 모두 가능. 혹시 몰라서 타이레놀 먹고 취침.
20시간 경과 - 체온 34.6도??? - 검색해보니 34도면 이미 시체라고 함. 잘못 측정한 듯.
22시간 경과 - 왼쪽 눈 부위에 쑤시는 듯한 두통이 아주 약간, 식도가 미묘하게 부은 느낌. 기분 탓인 듯.
24시간 경과 - 침 삼키기 약간 불편. 팔 통증 약해짐. 체온 36도. 
모든 증상은 일반적 감기증상의 아주아주 약한 버전. 백신 접종 이후의 일반적인 증상일지 궁금.
40시간 경과 - 체온 36도. 팔 통증 희미해짐. 열감 없음.
72시간 경과 - 평소 컨디션과 동일.
 
질병관리청에서 이상반응 신고 안내 카톡이 왔다.
"몸은 어떠세요?" 
이상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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