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크고 작은 사건사고-그에 따른 생각과 감정들이 머릿속에 시시각각 두서없이 쌓인다. 그 혼돈의 머리통을 목 위에 대충 얹어놓고 허둥지둥 살아가는 게 보통사람이다. 기억과 상념의 쓰레기더미를 집요하게 뒤져서 쓸만한 걸 골라낸 뒤 누가 봐도 몰입이 되게 서사를 부여하고 재치있고 독창적 표현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도 모자라서 폐부를 콱 찌르는 통찰력까지 곁들여 내놓는 인간은 백프로 미친년놈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짓을 할 수가 없다.

근데 무궁화호 맨앞쪽 창측 자리 개좋네 거의 공공도서관 디지털열람실급이다 정차할 때마다 승하차객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정신없이 문 여닫고 찬바람 막 들어오고 그러긴 하지만 콘센트 꽂고 와이파이 쓸 수 있는 게 어디여 으허허

읽고 싶었지만 불쾌해질 게 뻔해서 미루고 미뤘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예상했던 재미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불쾌함 때문에 잠깐 즐겁고 종일 괴로웠다. 불쾌함을 시간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다. 가령 행인의 경미한 무례함은 10분, 지인의 반복되는 무례함은 3시간, 잘나가는 남을 봤을 때는 18시간, 욕먹은 건 36시간, 일터에서 짤린 건 72시간, 질병 및 집안의 우환은 96시간 이상, 이런 식으로. 그 책의 불쾌감은 18시간짜리였다. 징징대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몸에 좋고 입에 쓴 약 같은 불쾌감이다. 때 맞춰서 적당히 잘 삼키고 사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목에 걸리겠지만.

여성문화회관에 볼일이 있어 들어가려는데 문이 안 열렸다. 럭비선수처럼 어깨로 문을 밀고 있는데 문 안쪽에 서있던 할아버지들이 양팔을 막 허우적거리면서 옆을 가리킨다. 알고 보니 븅딱같이 폐문을 밀고 있었다. 머쓱하게 옆쪽으로 가서 출입문을 미는데 또 안 열린다. 다시 허우적대는 할아버지들. 손을 앞으로 쭉-뻗어서-몸쪽으로-당기라고! 허허. 당겨야 되는 문을 밀고 있었다. 무사히 들어간 뒤 열심히 몸으로 말해주신 할아버지들께 꾸벅 인사했다. 무심한 듯 고개를 슬쩍 까딱하며 인사를 받는 그들에게서 담백한 위엄을 느꼈다. 헌데 기분탓일까. 여성관련 공공기관 건물에 할아버지들이 눌러앉는 경우가 꽤 있는 듯하다. 저번에도 어느 동네 카페에서 창밖을 보는데, 맞은편의 여성무슨센터 쉼터에 순 할아버지들만 드러누워있어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 현상에서 어떤 의미있는 원인을 감히 찾아내도 될까? 임산부석에 보란듯이 앉은 영감? 퇴직 후 마누라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늙은 남자? - 뭐 그런 행태들과 막 성급하고 경솔하게 연결지어도 되는 걸까? 그것은 엊그제 나를 도와준 바디랭귀지 할아버지들에 대한 결례가 아닐까? 가만 보면 나는 늘 습관화된 자기검열과 지구력 부족으로 인해 이쯤에서 생각을 차단해버리는 것 같은데, 아닌가?

배에 난 점을 무심코 긁었는데 점이 떨어졌다!? 뭐지?! 내가 1년이 넘도록 딱지를 점으로서 존중해줬단 말인가??? 너무 공허하다.

너저분한 꼴을 못 보는 엄마가 내 머리를 단발로 오려냈다. 약간 오징어지느러미 모양으로 짤렸는데 어차피 삭발할 거라 아무려면 어떠나 싶었다. 근데 계획대로 안 될 것 같다. 연말에 약속도 없으니 이참에 여쟈로 태어나 삭발 한번쯤은 해야 한다는 지론이나 실천하자 했는데,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올해까진 절대로 민머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정이 있었다. 1월에 밀까 했더니만 그것도 뭐 이래저래 곤란하다. 나는 내가 히키코모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 사회적 동물이었어. 실망스러우면서도 내심 희미한 안도감이 드는데…이렇게 핑계가 많아서야 평생 삭발 한 번 못해보고 죽겠다. 그냥 1월 1일에 냅다 깎어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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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가는 여자 뒷모습이 너무 나같았다. 검정모자 검정츄리닝 큼직한 배낭 윤기없는 산발 하체비만에 다리가 휜 각도까지 거의 나랑 도플갱어였다. 눈 마주치면 죽을까봐 얼른 고개를 숙이고 추월하려는데 미친 걷는 속도까지 나랑 똑같은겨. 한동안 나란히 걷다가 마음이 불편해 죽을 거 같아서 앞으로 냅다 달려버렸다. 그 여자도 똑같이 뛰었으면 존나 소름끼칠 뻔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동네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동성친구들끼리 장난치고 놀 때 여고생은 서로를 미친놈이라고 하고 남고생은 미친년이라고 하더라. 뭔데 이 교차오염.

노점에서 1키로 2000원 하는 연근을 얼씨구나하고 두 봉지 샀다(인터넷가 1키로 7000원선). 그런데 집에 와서 씻어보니 세에상에 뭔놈의 진흙이 이렇게 많이 붙었냐? 대부분의 연근에 분식집 오징어튀김옷 두께의 흙이 기본으로 입혀져있고 어떤 건 아예 연근의 형상을 한 흙덩이였다. 그 흙으로 빚은 연근에 이르러서는 열받다못해 그만 감동을 해버렸다. 이쯤 되면 이거는 예술작품을 샀다고 봐야 한다. 흙 무게를 빼도 시세보다 저렴한데 맛도 괜찮고 흙공예품까지 감상했으니 결론적으로 만족.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는데 누가 또 밑줄을 잔뜩 쳐놨다. 이번 밑줄자는 혼돈의 파괴자형이었다. 아무래도 좋을 곳에 밑줄을 치고(‘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꼭 짬을 내어 운동했다’는 문장에서 ‘그렇게’에 밑줄) 그 밑에 까닭 모를 말을 써놨다(‘그밖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한’ 밑에다 ‘나는’이라고 씀). ‘나는’…? ‘나는’ 뭐…? 무슨 심정으로 ‘나는’을 썼을지 애써 짐작해보려다 몇 페이지 뒤에 ‘햇살을 모으는 생쥐’라고 쓴 걸 보고 멍해졌다. 이건 또 뭔……근데 문구에 담긴 어떤 동화적인 서정성이 뭔가 묘하게 마음에 남는 것이다. 검색해보니 [프레드릭]이라는 동화의 일부분인 듯. 궁금해져서 나중에 읽을 책 목록에 추가했다. 밑줄자는 어쩌면 육아에 과몰입한 양육자였을까. 하여간 이런 식으로 책을 영업당하기는 또 처음이다.

이 와중에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게 될 줄이야. 하긴 2차대전 배경의 몇몇 작품에서 크리스마스를 묘사한 걸 떠올려보면, 큰 고난 속에서 다가오는 명절을 전에 없이 애틋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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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 오른쪽 갈비뼈 아래 뜨끔거림.
- 고구마 100개를 먹은 기분 = 개존맛. 1000개도 더 먹겠다.
- 도서관에 다시 다니기 시작. 경)3백원 내고 연체자 신분 탈출(축
- 블루투스 키보드 3만원돈에 구입(진짜큰맘먹은거임). 똑같은 걸 19900원에 파는 판매처 뒤늦게 발견. 방바닥을 뒹굴며 울부짖다 바닥이 더러워서 금방 일어남.
- 글쓰기 최대 방해물은 유튜브와 앱테크로 판명됨. 공기처럼 틀어놨던 유튜브 시청시간을 제한하고 앱테크를 끊으니 효율 상승.
- SNS는 못 끊음. 하필 또 좋은 책 드라마 영화정보를 잔뜩 얻어서 끊지 못할 이유만 강화됨.
- 백발로 살려다가 결국 못견디고 염색함. 삭발욕구 강해짐.
-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사랑스런 개에게 핥음당함. 반대였어도 만족했을 듯.
- 부스터샷 예약완료.
- 블로그 유입키워드 중 ‘백신접종 씨발’이 있었음. 엄청 신경쓰임. 부디 씨발스런 일 없이 무사접종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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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_필기도구를 24시간 몸에 붙이고 다니며 틈만 나면 글을 쓰려고 했으나 죽어도 안된다. 공책에도 PC에도 태블릿에도 안 써진다. 옛날엔 최소 어느 한 군데에는 써졌었다. 열심히 해도 안 되길래 기대를 내려놓고 힘을 빼봤더니 더 안됐다. 겪고 느낀 걸 문장으로 변환하는 기능이 좃된 것이다,, 라고 하기에는 여기다 계속 뭘 쓰고 있긴 하고...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 하도 오래 고민해서 이제 더는 생각도 하기 싫다. 퍼뜩 기시감이 들어 블로그의 예전 글들을 훑어봤다. 수치심을 참으면서 계속계속 훑어봤다. 내가 쓴 거니까 다 비슷하게 짜증나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어쩜 이렇게 꾸준히 지긋지긋하게 굴었는지 새삼 놀라웠다. '나는못났고뭐든못하고사랑받지못하니까죽고싶은데그래도어쩌겠어'의 정서로 대충 끝맺는 구조. 날짜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도 죄다 그런 글이다. 무려 십여년간 이지랄을 해온 것이다. 아니 십여년이 아니라 수십년이네. 고딩 중딩 초딩때도 늘 그랬다. 일기장 어디를 펼쳐봐도 잘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 불만 불안 초조 긴장 좌절 열등감에 쩔어있지 않은 페이지가 없었다. 뒤져야 끝나지 이짓은.


good_즉 수십년간 쥐뿔도 발전을 안했는데 뒤지지 않고 살아남은 개꿀인생인 것이다. 자축의 의미로 도장찍힌 돼지고기 2키로를 8천원에, 새송이버섯 2키로를 5천원에 샀다. 버섯은 버섯맛이었고 돼지고기찜이 아주 맛있었다. 껍질 잘 까지는 반숙란 삶는 법을 터득했다. 선물받은 비건 쿠키와 스콘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얻어먹은 국밥과 케이크와 냉면과 빵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체형이 점점 웅장해지고 있지만 전처럼 신경 쓰이지 않는다. 다시 나가서 걷기 시작했다. 책과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훈련을 시작했다. 최근에 본 영화들이 다 재밌었다. 휴대폰을 멀리하고 있다. 남의 빛나는 순간을 보고 자괴감에 빠져드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떤 고마운 메시지를 보고 어차피 평생 못 그만둘 자학성 자기복제라면 그래도 좀 성의있게, 재밌는 방식으로 해야겠다고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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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or bad_

쓰레기 분리수거를 3주간 미루고 도서관 책도 연체하고 말았다. 쓰레기야 그렇다쳐도(아니...이것도 사실 그렇다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집 꼴이 시사고발프로의 범죄현장처럼 되어간다...)도서관 책의 대출기간만큼은 정말 강박적으로 잘 지키는 편이었는데, 이게 무너지니 위기감이 바짝 든다. 지금 아주 잘못 살고 있다. 글쓰기 때문이다. 


만화와는 달리 뼈빠지게 그림작업을 안해도 된다는 점에서 글쓰기를 어떻게든 미래의 밥줄로 삼아야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경솔했다. 그림노가다가 손목과 허리를 크게 해먹기는 해도 노가다 특유의 어떤 신성한 정화력이 정신을 평화로운 진공상태로 만들어주는 측면이 있다(어쩌면 탈진이었을지도). 반면 글쓰기는 멘탈이 작살날 때까지 정신력을 쭉 빨아간다. 작업시간 내내 자비없이 논스톱으로 쭉쭉. 과정을 전혀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하기만 하는 건 그 분야에 재능이 없다는 결정적 증거인데, 내가 눈치없이 너무 오래 질척대고 있는 건지. 어떻게 생각하면 남들은 더한 고생도 하는데 나만 유난떠는 것 같고(과연 행복의 척도를 외주줘버린 집단주의 동양인 근성) 나이 처먹고 재능 운운하며 도망가는 것도 좀 짜치지 않나 싶고...
허허 이럴 땐 고구마를 먹쟈

럭비공만한 고구마 뱀처럼 긴 고구마 뒤틀린 고구마 꼬부라진 썩은 고구마 두동강난 고구마 딱지 앉은 고구마… 그러니까 지금 집에 남은 대부분의 고구마가 고구마계의 루저들인 셈인데, 얘들을 만지고 씻고 손질하고 구워먹고 있자면 너무 맛있어서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냥 어떻게 되겠지 싶어진다. 이렇게 맛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경춘선 망우역을 지나는데 얼씨구야(수도권 지하철 환승역을 알려주는 그 국악)의 음질이 개좋은 것이다. 연주에 쓰인 악기 하나하나가 살아서 요동치는 듯한 고음질이라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없던 흥이 솟아올라 전국노래자랑 관객할매처럼 춤출 뻔했다. 환승자들이 얼씨구야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열차를 갈아타는 장면을 상상했다. 안전사고가 속출하겠구나. 아무래도 BGM의 음질은 좀 열화시키고 멘트는 더 크고 또렷하게 조정하는 것이 공동체의 안녕에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하필 망우역 얼씨구야의 음질을 유독 좋게 느꼈던 걸까. 실제로 그런 걸까 아님 계속 졸다 깨다 졸다 깨다 하는 와중에 청각기능에 뭔가 왜곡이 생겼던 걸까. 나중에 확인해봐야지, 해놓고 또 귀찮아서 안하겠지.


그러고 보니 전국노래자랑은 요즘 어찌 돌아가나 문득 궁금해져 찾아보니 아이고. 작년 3월 이후로 녹화 일정이 전면 중단된 채 현재까지 재방송만 나오고 있다. 고령의 관객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프로그램에 이 시국은 진짜 치명적이겠다. 아쉬워할 사람들 많겠지 싶어 시청자 참여게시판을 둘러보다 뿜었다.

위의 글에 극대노한 답글↓

 

이쪽 팬덤싸움도 굉장하네요.
어쨌든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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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or bad_

공기가 너무 나쁘다. 옆나라에서 미친듯이 일하나보다.

집중력과 작업효율이 엉망진창이다. 멀쩡히 잘 일하다가 갑자기 이따 피곤해질까봐 미리 자빠져 자버린다. 이 사이클이 두어 번 반복되면 하루가 허무하게 녹아 없어진다. 매번 이런 꼴이다. 이 와중에 하고 싶은 일은 자꾸 생긴다. 지키지 못할 자기와의 약속만 계속계속 늘어나는 셈이다. 일종의 현실도피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건 작업루틴을 다잡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기사님이 실수로 문을 닫아서 몸이 끼었다. 페르시아 왕자 게임이었으면 몸통이 반으로 짤렸을 상황이었다. 문은 바로 다시 열렸고 다친 곳도 없었지만 크게 당황한 나의 마음을 기사님에게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어졌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운전석 쪽을 바라봤다. 기사님이 화답하듯 백밀러로 사과의 눈빛을 쏴줬다. 엄청나게 간절한 진정성이 담긴 눈빛. 그만 고마워져버려서 꾸벅 목례하고 하차했다.

다섯 손가락 중 손톱이 가장 빨리 자라는 것이 중지라는 걸 알았다. 닷새간 습득한 지식 중에 이게 가장 맘에 든다.

R을 만났다. 오랜 친구들과 쌈밥을 먹고 커피와 빵을 먹고 양고기 먹을 약속을 잡았다. 그것만으로 석달치 행복을 넘치도록 채웠다. 뭐 또 며칠 안 가서 이런저런 일들로 속 끓이고 땅으로 꺼져들고 멘탈 박살나고 난리날 게 뻔하지만, 부디 그 때 이 순간을 되새기며 힘을 내기를. 이제 제발 좀 그래봐라.

모두가 고구마 선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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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or bad_

일하기가 너무 괴로워 열일을 마다했고 그 결과 팽팽 놀게 됐다. 인간관계로 인한 리스크를 피하고자 모두를 멀리했고 그 결과 쾌적한 고독을 누리게 됐다. 식비로 나가는 돈이 아까워 죽겠다 죽겠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산 결과 엄청난 양의 고구마를 얻게 됐다. 사실상 모든 것이 내 바람대로 돌아가고 있으므로 스트레스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래서 아까 낮에 잠깐 양손에 고구마를 들고 기쁨의 춤을 췄다. 문제는 그 고구마가 썩고 있다는 것. 심각한 일은 그뿐이다.

 

몇 달간 겪었던 일들의 모든 순간을 세세히 기록하고픈 마음과 그에 대해 한글자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정확히 똑같은 높이로 굴뚝같아서 아주 괴롭다. 이렇게 된 이유를 안다. 이미 그 일들의 일부를 쓰고 그려서 편집자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내게는 피같이 소중한 순간들이 상품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뿐더러 내가 각별히 여기는 실존인물들의 가치마저 내 창작물에 등장했다는 이유로 싸잡혀 저평가돼버린 느낌. 순전히 내 능력부족으로 인해. 이건 정말……많이 아프다. 또 겪자니 두렵다. 그래도 고구마를 많이 먹고 춤을 추니 고통이 좀 옅어진 것도 같다. 부디 내 멘탈이 앞으로도 숱하게 닥칠 그 좌절감에 단련되길 기원하며, 기우제 지내듯 매일 춤을 춰야겠다.

 

네 살짜리 조카가 검지손가락으로 내 몸을 쿡 찌르더니 표정이 굉장히 이상해져서 여기저기를 다시 쿡쿡 찔러보고 하는 말. "왜 몸이 말랑하지...? 몸이...어떻게 이렇게 말랑하지...?" .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 근육운동 좀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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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어떠한 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모든 것의 의미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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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or bad_
몇 주째 고구마를 매일 양껏 먹는데도 전혀 안 질린다(음식에는 '물린다'가 맞는 표현이라지만 싫다...'바라요'만큼 거슬린다). 고구마 굽는 냄새가 델리만쥬보다 훨씬 좋다. 살이 엄청 쪘다. 몸에서 뼈가 드러났던 곳이 다 살로 덮였다. 체중은 무서워서 못 재겠다. 여기까지 쓰고 두 개를 더 먹었다.

토끼간을 먹었다. 몸집에 비해 간덩이가 꽤 큰 편이다 싶었던 것을 빼면 인상적인 점은 없었다. 돼지간과 비슷했다. 값은 세 배나 비싸면서. 전래동화의 과장광고 PPL에 낚인 전형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용왕 개새끼! 경험상 포유류의 간맛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사람의 간맛도 소 돼지 토끼와 궤를 같이 하리라 짐작한다.  

좋은 글을 읽을 때면 이 글은 몇 시간만에 나온 것이며 수정은 몇 번 했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나는 한큐에 글을 다 써본 기억이 없다. 머릿속에 두서없이 솟았다 꺼지는 문장 토막들을 힘들게 캐내서 흙 털고 썩은 부분 도려내고 맞춤법과 육하원칙과 문장간의 인과관계를 사후적으로 아주아주 힘겹게 맞춰가며 글을 쓴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렇기에, 내 글을 읽으며 산만하고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내 무능은 나를 새롭게 좌절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쓰고 그리고자 하는 의지는 제법 싱싱하다. 희한하다. 나 원래 의지박약인데. 그렇게 내 작업물이 수치스러워서 치를 떨면서도 어째서 뭔가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에 없이 꽉 붙들게 된 걸까? 고구마 폭식과 꾸준한 스쿼트 덕분인가? 희망의 원천이란 결국 허벅지 근육인가? 이렇듯 꾸준히 샘솟는 희망과는 별개로 전문가에게 정확한 자세교정을 받아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몸이 가장 낮아질 때 왼다리 뒷근육이 시리게 당기는 느낌이 있다.

올해가 지나면 기나긴 실업상태에 돌입할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얼어붙는다. 식구들이 더 늦기 전에 너도 얼른 시류에 편승하라며, [오징어게임] 아류작으로 [꼴뚜기게임] 같은 거 그려보라며, 오리지날의 백분의 일만 팔려도 그게 어디냐며, 오징어를 꼴뚜기로 패러디한 자신들의 센스에 크게 만족한 듯 낄낄 웃었다. 맙소사. 이미 누군가 어느 구석에서 써먹었을 발상이라 백퍼센트 확신하며 검색해보니, 역시나 컬투쇼에 꼴뚜기게임이라는 코너가. 아아 컬투쇼. 과연 한반도 메이저 정서의 교과서. 오늘도 큰 깨달음 얻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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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나일기_211010  (0) 2021.10.10

good_관상용인줄로만 알았던 집앞 꽃사과나무가 실은 식용 산사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나무 아래서 열매를 줍는 할머니에게 직접 물어봤다. 초면의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은 내게 굉장히 힘든 일인데, 용케 물어볼 생각을 하고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는 게 아주 대견해 죽겠다. 참고로 할머니는 그 산사열매로 효소와 술을 담근다고 한다. 한때 만원돈이었던 계란 한판이 4980원까지 떨어졌다. M님의 메일을 받고 정말 너무 기뻤다. M님은 영어를 쓰고 나는 한국어로 답했는데, 서로 다른 언어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뭔가 따뜻한 마법같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bad_고구마를 오래 보관하려면 신문지가 많이 필요한데 눈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난생 처음 신문지 11Kg을 돈 주고 샀다. 집에 쌓인 신문지 뭉치를 학교 폐품 수거일에 왕창 갖다냈던 일이 전생처럼 느껴진다. 뽀모도로 타이머로 한동안 순조롭게 작업하나 했는데 몸 안 좋고 울적한 요즘 같은 땐 아무 소용없다. 50분 작업-10분 휴식 루틴이 10분 작업-50분 휴식으로 망가져버렸다. 꾸준히 일기를 올리는 어떤 블로그를 보다가 지나치게 재밌어서 기분이 상했다. 글에서 막 진정성 생동감 유우머 따위가 막 넘쳐나고 난리났는데 그 블로그 주인도 지 글 지가 재밌는 거 알고 신나서 쓰는 게 너무 느껴져 존나 얄미웠다. 내 글이 구리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급기야 유튜브에 '에세이 잘 쓰는 법'을 검색해버렸다. 뾰족한 답은 당연히 못 얻었고 (유튜브에서 가장 뾰족한 건 썸네일에 박힌 제목이다) 이걸 검색했다는 사실만 죽도록 수치스러웠다. 동네의 익숙한 가게들이 망해나가고 있고, 그 빈 자리를 24시간 무인 찌개 판매점이 채우고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쾌유를 빌어야만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나 자신도 거기에 추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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